
‘경제의 허리’ ‘사회안정의 중심축’ ‘문화활성화의 주역’ ‘여론 주도층’…. 모두가 중산층을 표현하는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민주주의의 근간’으로까지 수식하기도 했다. 한 나라에서 중산층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중산층의 복원’을 강조하며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낙수효과’ 대신 ‘분수효과’를 내세우기도 했다.
중산층 개념을 국제적으로 정의하는 기준은 없다. 경제적 기준을 강조하지만,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기준은 OECD의 분류다. OECD는 가구소득을 나열해 중위소득의 75~200%를 중산층으로 분류한다. 당초 50~150%로 보다가 2016년에 기준을 바꿨다. OECD 기준을 한국에 적용하면 올해 4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512만1080원, 지난해는 487만6000여원이다.
지난해 월평균 가구소득 600만원이 넘은 고소득자 10명 중 9명이 자신을 중산층 이하로 느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통계청의 ‘2021년 사회조사’를 보면, 해당 응답자의 78.3%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중’이라고 답했다. 가구소득 600만원 이상은 조사 대상 가운데 월평균 소득 구간이 가장 높다. 그럼에도 상층에 속한다는 응답은 8.9%에 그쳤다.
반면 해당 응답자 중 ‘하’층에 속한다는 응답은 12.8%나 됐다. 이는 근로소득과 자산소득 간의 격차, 총소득이 근로소득보다 자산소득으로 결정되는 구조 등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집값 폭등으로 자산소득 증가폭이 워낙 커 근로소득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탓도 있다. 근로소득 수준으로 보면 중산층임이 분명한데도, 중산층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실제 삶의 질이 평소 생각하는 중산층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먹고살면서 문화생활도 즐기고 노후준비도 하는 삶의 질을 꿈꾸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웬만한 근로소득으로는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구입하는 것도 힘들다. 사교육비 부담, 노후 걱정도 크다. 중산층의 여러 긍정적 역할을 감안할 때,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꿈도 사그라지는 듯해 안타깝다.
도재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