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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 유명을 달리함

opinionX 2020. 7. 16. 10:57

신문·방송엔 근래 ‘극단적 선택’이 많이 쓰인다. 스스로 생명을 끊는다는 ‘두 글자’를 제목·기사 속에 쓰지 말라는 한국기자협회 권고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 기준에선 엄밀히 ‘극단적 선택’도 ‘스스로 목숨 끊다’ ‘목매 숨져’ ‘투신 사망’과 함께 자제할 표현으로 예시했다. 행위를 암시하거나 방법·도구·장소·동기를 구체적으로 담지 말라는 권고이다. 모방을 유발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막기 위해서다. ‘사망하다’ ‘숨지다’같이 사실만 전하라고 하지만, 성격이 다른 죽음의 표현을 두고 언론의 딜레마는 계속되고 있다. 1990년대 사건기자 시절, 검은 바탕에 선명한 제목이 뽑히고 시시콜콜한 팩트를 넣도록 했던 때와는 천양지차다. ‘두 글자’가 지면·방송에서 사라지고 정부 통계도 줄었다니 계속 지켜가야 할 방향이다. 대안은 동사가 있는 객관적 표현으로 ‘유명(幽明)을 달리하다’를 생각해본다. 누가 집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식으로.

죽음이 저항일 때가 있었다. 1980년대 대학에서 타오른 ‘화염’이 그랬고, 50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며 평화시장을 달린 전태일이 그랬다. 결백과 진실을 알리고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고발성 죽음’도 스포츠·노동계 등에서 이어지고 있다. 5년 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도 ‘8명의 리스트’를 품고 마지막 인터뷰할 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진실과 진실의 고백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한국에서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 비율이 압도적 1위인 이유로는 노인들의 빈곤·외로움이 지목됐다. 그 외에도 사회적으로 돌아볼 ‘마지막 길’은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행위를 ‘범죄’로 단정한 글이나 댓글이 나오고 있다. 결코 미화해선 안 될 행동이다. 하지만 그렇게 매듭된 누군가의 죽음을 범죄학이나 정치적으로만 재단하는 관점은 좁고 일관될 수 없다. 사자(死者)도, 피해자가 있을 땐 어느 쪽도 상처·자극·트라우마가 될 요소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지난해 10월 마포대교 난간에 있던 위안·희망·아재개그식 문구를 모두 지웠다. 실제적 예방 효과는 적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어렵고, 전할 때마다 신중을 거듭할 게 죽음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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