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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 고향인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라고 했다. 여기서 ‘깝치다’는 “신이 나서 몸이나 몸의 일부를 방정맞게 움직이다”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경남 하동군 평사리를 무대로 한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도 ‘깝치다’가 나온다.

그런데 이 시구(詩句)의 ‘맨드라미’는 아주 이상하다. 닭의 볏처럼 생긴 꽃을 피워 계관화(鷄冠花)로도 불리는 맨드라미는 봄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꽃은 한여름에 핀다. 게다가 관상용으로 키우는 꽃으로, 우리네 들판에서 쉬 볼 수도 없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속의 맨드라미를 ‘민들레의 경상도 사투리’로 본다. 시에는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과 ‘마른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라는 구절도 나오는데, 봄볕 아래로 보리밭 가는 길과 도랑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민들레다. 전라도에서도 민들레를 ‘맨드라미’와 비슷한 ‘미느라미’로 부른다.

민들레는 참 흔한 꽃이다. 옛날 이맘때면 이 집 저 집 ‘대문 둘레’에도 뿌리를 내렸을 터다. 그래서 민들레의 또 다른 이름이 ‘문둘레’다. ‘문둘레’는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민들레의 평안·함남·황해 방언”으로 올라 있다. 민들레를 ‘문둘레가 변한 말’로 보기도 한다.

이런 민들레를 늘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홀씨’다. 가수 박미경씨가 부른 ‘민들레 홀씨 되어’ 때문인데, 정작 민들레와 홀씨는 눈곱만큼도 관련이 없다. 민들레꽃이 진 뒤에 생기는 ‘하얀 털 뭉치’는 홀씨가 아니다. 홀씨를 한자말로는 ‘포자(胞子)’라고 하며, 이끼·곰팡이·버섯 등 꽃이 피지 않는 식물들이 포자로 번식한다.

그러나 민들레는 꽃이 피는 식물로, 당연히 씨앗으로 번식한다. 하얀 털 뭉치가 바로 씨앗들이 엉켜 있는 것이다. 이를 가리키는 바른말은 ‘상투털’과 ‘갓털’이다. 북한에서는 ‘우산털’로도 부른다. 다만 노래 제목을 ‘민들레 상투털(갓털) 되어’로 하기는 좀 그렇다.

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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