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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휴대폰엔 박원순 서울시장 주검이 발견됐다는 속보가 떠 있었다. 툭, 한숨이 터졌다. 생전의 그가 주마등처럼 흘렀다. 성폭력으로 피소된 일도 포개졌다. “박원순마저~”로 시작될 격랑의 높이를 그 밤엔 잴 수 없었다. 정신만 말똥말똥해졌다. 동이 튼 세상은 팽팽했다. 고인에겐 긴 추모행렬이 섰고, 피해자 곁엔 연대의 손이 모였다. 조문을 하니마니 정치는 갈라졌다. 미화해선 안 될 삶의 끝, 그렇다고 가벼이 지워질 수 없는 한평생의 헌신과 선 굵은 족적, 사람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힘들어했다. 비보를 접한 그 새벽, 두 글자를 새겼다. ‘균형’이다. 있는 대로 기억하고, 있는 대로 책망하자고….

 “이젠 쉬세요.” 서울광장 시민분향소 방명록에 가장 자주 보인 말이다. 서울대 입학 첫해 유신 긴급조치로 제적되고, 검사 생활도 6개월 만에 던진 그의 20대는 질풍노도였다. 1986년 서른에 시작한 역사문제연구소는 민변-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서울시장으로 이어졌다. 공적 연표만 34년. 사람들 머릿속에 그는 ‘일하는 사람’이거나 ‘일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구동성으로 쉬라는 말이 앞선 이유일 게다. 스스로는 ‘황태 덕장’ 얘기를 즐겼다. “명태는 겨우내 덕장에서 얼었다 녹기를 되풀이하고 봄 되면 명품이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굽이굽이 바다로 흘러가는 강’으로 묘사한 세상사 굴곡과 역사의 진보를 박 시장은 황태 덕장에 빗댔다. 폭우 속에 그가 떠난 날 내 기억 속 세 토막도 띄워 보낸다. 인상 깊은, 그날그날의 그였다.

#2001년 여름. 원주 상지대에서 노무현·김근태·손학규·이부영의 4색 대화가 끝난 밤, 상경하는 참여연대 봉고차에 탔다. 사회를 본 그에게 네 사람의 품평을 물었다. ‘오프(비보도)’로 한마디씩 뽑고는, 대뜸 노무현·이회창이 붙으면 재밌겠다고 했다. 서울법대 대 부산상고, 대법관 대 민변, 주류 대 촌놈. 그는 대척점이 붙어야 세상 문제도 제대로 드러나고 바뀐다고 했다. 곰곰이 창밖을 보다 “소셜 디자이너가 꿈”이라 했고, 솔잎(시민사회)만 먹고 살겠다고 했다.

#2009년 가을. 그렇게 결기서린 표정은 처음이었다. 희망제작소에서 몸소 겪은 국정원 사찰 정황을 알렸다가 ‘원고 대한민국’으로부터 2억원 민사소송을 당했을 때다. “겁주기 소송이다. 잘못 건드렸다”던 그는 1·2·3심을 다 이겼다. “국가는 감정을 가진 명예훼손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첫 판례가 세워졌다. 시련 끝에 “정치해볼까” 물었던 날이다.

#2019년 봄. 서울시장 9년간 잘하고, 못하고, 기분 좋았던 것을 물었다. 수없이 꽂혀 있던 시장실의 ‘아이디어 파일’을 떠올리면서다. ‘메르스 과잉대응’ 소릴 듣고, 서울시 청년정책 설계를 청년들에게 맡긴 걸 좋게 꼽았다. 기분 좋은 건 시립대 반값 등록금과 제주 바다의 제돌이를 볼 때라고 했다. 반값 등록금은 “소 판 돈과 누이들 희생으로 공부했다”는 그의 두 번째 서명이었고, 제돌이는 직권으로 풀어준 남방큰돌고래였다. 못한 것은 “너무 많죠. 그건 다음에”라고 넘어갔다. “정치인 다 됐다”는 말이 나왔다.

그도 스스로 무너졌다. 인생 여정의 마지막에 여비서의 성폭력 피소가 찍혔다. 1999년 첫 성희롱 승소를 변론하고, 젠더 특보도 둔 “사람특별시 시장”의 무참한 일탈이다. 아카시아 뿌리만큼 질긴 권력의 사유화이다. 무죄 추정을 거론하는 게 허허롭다. 2차 가해도 모질다. “모든 분께 죄송하다”는 박 시장 유언에선 피해자를 괴롭히지 말라는 속죄가 읽힌다. 정녕 이 사회가 할 것은 따로 있다. “처음에 울부짖었어야 했다”는 그에게 “그때도 지금도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홀로 힘들었다”는 그에게 ‘성폭력 옴부즈맨’이 제대로 작동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법정에서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용서하고 싶었다”는 그에게 최선을 다한 진상조사 결과를 주는 것이다. 그래야 권력형 성폭력의 흑역사는 끝나고, 그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쪼개진 나흘, 이래도 저래도 사람들은 무겁고 불편했다. 영결(永訣)되지 못한 무엇 때문이다. 박원순을 이을 게 많고, 박원순을 찍고 끊을 게 생겼다. 산 자의 몫이 된 두 개의 유산이다. 경계할 건 이분법이다. 추모하는 맘을 가해로, 피해자와 연대하면 무례로 낙인찍는 독선을 벗어야 한다. 내놓고 “박 시장은 맑다”고 말하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상처를 보듬으며 공동체는 훌쩍 거듭나야 한다. 박 시장의 명복을 빈다. 그의 유족과 피해자에게도 위로를 전하며 가호(加護)가 있길 빈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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