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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억원! 지난 5월 중순, 앤디 워홀의 매릴린 먼로 초상화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0세기 미술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경신하였다. 이는 세계 미술 경매 사상 역대 두 번째 가격이다.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둥 등 유명인의 초상뿐 아니라, 코카콜라나 캠벨 수프 캔처럼 일상의 소재를 예술로 끌어들인 앤디 워홀. 그는 고상하고 젠체하는 엘리트 중심의 순수예술에 소시민들의 대중문화와 상업주의를 들이민 팝아트의 거장이다.

워홀은 데이지나 장미, 붓꽃 등을 소재로 한 정물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64년에 제작한 ‘꽃(Flowers)’ 시리즈이다. 단순한 듯 화려한 색이 특징인 그의 꽃 작품을 미술평론가 데이비드 부르동은 “마티스가 오려낸 구아슈(gouache)가 모네의 연못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사람들은 이 꽃을 대부분 그저 ‘이름 없는 꽃’으로 생각하지만, 그 꽃은 무궁화이다.

이 작품의 출발은 다른 사람의 사진이었다. 워홀은 ‘모던 포토그래피’의 편집장이었던 퍼트리샤 콜필드가 찍은 무궁화 사진을 사용해 실크스크린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실크스크린의 데이글로 컬러는 강렬하고 화려하지만, 실크스크린의 특성상 꽃의 입체감이 생략되어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이 꽃을 아네모네나 한련화, 또는 팬지꽃으로 알고 있었다. 작품 제목이 단순히 ‘꽃’이었으니, 그가 꽃 이름을 몰랐을 수도 있고, 아예 꽃 이름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대한민국 국화(國花)에 흥미를 느꼈다는 기록도 없지만, 그 꽃이 무궁화꽃이라는 것에 관심이 더 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그의 꽃 작품에서 꽃의 한가운데에 무궁화꽃의 특징인 수술대와 구슬 같은 꽃밥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궁화도 여러 종이 있다. 워홀의 꽃-엄밀히 말하면 콜필드가 찍은 무궁화-은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와 매우 비슷하지만, 하와이무궁화가 아닐까 싶다. 워홀이 하필 무궁화를 고른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 꽃잎이 크고 분명하여 꽃의 형상을 대표할 만한 ‘보편적인(universal)’, 그래서 ‘대중적인(popular)’ 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케네디 사망 이후, 워홀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재클린 케네디의 초상화와 함께 ‘꽃’ 시리즈를 제작했다고도 말한다. 워홀은 평소 자기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작품의 겉면만 보시라.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꽃의 화려함 뒤에는 덧없음이 숨어 있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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