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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인생+]전환의 기술

opinionX 2021. 8. 12. 10:05

배구나 펜싱 등 스포츠 경기에서 자주 접하는 장면이 있다. 팀이 수세에 몰릴 때 감독이 작전타임을 부르거나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는데, 상대가 주도하는 경기의 맥을 끊어놓기 위함이다. 야구에서 투수가 흔들리면 포수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 말을 건네는 것도 마찬가지 효과를 노린다. 그런데 그때 투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볼 배합에 대해 주로 의논하지만, ‘오늘 저녁 뭐 먹을까?’처럼 엉뚱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려 중압감을 해소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인데, 개인의 삶에서도 그런 쉼표를 찍어야 할 때가 있다. 고령화와 함께 사회의 변화가 빨라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생애주기 곳곳에 가파른 경사나 급커브 구간들이 느닷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중년기 이후에는 정밀한 전환의 기술이 요구된다. 길을 헷갈리거나 사고를 내거나 연료가 바닥나면 낭패를 본다. 이따금 상황을 체크해야 하는데, 특히 직선도로를 전력 질주해왔다면 점검이 필수적이다. 그를 위해 곳곳에 주유소와 정비소와 휴게소가 마련되어야 한다. 인생의 여정에서 그것은 무엇일까.

오래전 어느 텔레비전 방송에서 본 것이 떠오른다. 미국 어느 도시의 사례인데, 지자체가 퇴직자들을 위해 개인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커다란 사무실에 컴퓨터가 놓인 책상들을 나란히 배치하여, 각자 배정된 장소에서 종일 지낼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상담과 조언을 받을 수도 있다. 직장이 없어졌지만 매일 아침 그곳으로 ‘출근’하여 구직 준비나 후반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용자들에게 그곳은 일종의 완충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 인간으로 기계적인 노동만 하다가 갑자기 사회적 위치를 상실하고 집에만 머물러야 할 때 생겨나는 정체성의 혼란과 충격을 줄여주는 매개 영역인 것이다.

이제 ‘워라밸’만으로는 부족하다. 일과 삶의 평면적 균형을 넘어 입체적인 순환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제3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집과 직장 및 학교 이외 장소에 편안하게 머물면서 이웃들을 만날 수 있는 곳들이 지역에서 다양하게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 환경에 접속하는 일상에는 리듬이 생기고 활력이 피어난다. 행동반경이 크게 제약받는 팬데믹 시대에 생활의 입체감과 내재율을 북돋는 루틴은 더욱 절실하다. 거리 두기를 준수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길들을 찾아보자. 여러 공간을 넘나들면서 마음을 리셋하고, 고요한 성찰과 너그러운 대화 속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다.

일상의 전환은 생애전환의 기술을 익히는 토대가 된다. 가슴이 눅눅해질 때 여행으로 심신의 기운을 바꿔낼 수 있다면, 생애의 시야가 막힐 때 경로를 새롭게 탐색하는 여유로움도 체득할 수 있다. 게임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타임아웃을 요청하듯, 삶의 스텝이 꼬이면 속도를 줄이고 템포를 조절해야 한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위치와 방향을 점검하고, 여차하면 목적지를 변경할 수도 있다. 인생의 중대한 변곡점에서, 정지는 도약을 위한 준비 동작이다. ‘존재를 멈추지 않고서는 어떤 생명도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승화할 수 없다.’(아난다 쿠마라스와미)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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