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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 해가 저문다. 저무는 붉은 해를 보면 마음이 바빠진다. 한 해가 저문다는 시간성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맘때쯤이면 한 해를 보내는 나만의 ‘의례’를 갖곤 한다. 40대 초반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사표를 던진 후 갖게 된 나만의 루틴이다. 평소 좀처럼 시간이 없어 탐독할 여유를 내지 못한 두툼한 책을 끼고 집에서 ‘홈뒹굴링’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그렇게 지난 십여 년 동안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었고, 스페인어 완역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었으며, <김수영 시 전집>을 다시 읽었다. 하지만 읽고자 했으나, 아직 손대지 못한 책들의 목록은 더 많다. 누군가 선물해준 두 권짜리 <휠덜린 시 전집>은 아직 한 권조차 미처 읽지 못했고, 읽어야 할 책과 저자들의 목록은 갈수록 쌓여만 간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은 많다고 해야 할까. 나는 주로 세밑의 시간에 ‘고전(古典)’을 찾아 읽으려 했다. 누가 그랬던가. 고전이란 너무나 유명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나는 세밑의 의례에서 ‘끝과 시작’을 생각하고자 했다. 세상 잡사 따위 신경 끄고 어느 골방에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라도 된 양 몇날 며칠이고 시간을 죽이며 책을 벗 삼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허세’나 ‘허영’ 심리가 아주 없었던 것이 아니다. 삶의 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격(格)’이라며 내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한 적이 많다. 고독할 수 있는 힘을 뜻하는 고독력(孤獨力)을 기르는 전지훈련 과정이라고 흰소리를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동물에 가깝다는 말은 늘 든든한 방패막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의 세밑 의례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읽고 싶었던 책을 찾아 탐독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책읽기를 하는 것이다. 지난해 작고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처음 번역한 1991년판 <오래된 미래>를 그렇게 여러 차례 읽었고, <논어>를 다시 읽었으며, 최근에는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끝과 시작>을 즐겨 읽곤 한다. 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버릇이다. 책읽기는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한 ‘실용’ 목적이 크지 않던가. 2018년 아르떼 생애전환학교 ‘문학과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50+ 신중년들 또한 문학책보다는 ‘자기계발’ 책을 읽겠다고 계획서를 작성했다. ‘나 주식회사’의 CEO(최고경영자)가 되라고 재촉하는 신자유주의적 무언의 압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세밑의 시간, 심보르스카의 시집을 다시 읽는다.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재기 발랄한 상상력의 수원지이다. 하지만 예전에 주목하지 못했던 시들이 눈에 확 꽂힌다. 경전의 원문은 그대로인데 경전을 읽는 나 자신이 변한 것이리라. 어찌할 수 없이 나이듦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은 없다’를 나직이 읽는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생, 두 번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탐독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는 인생의 재미와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홈뒹굴링의 시간은 계속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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