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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츠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사실상 독차지한 배달앱 시장에 새롭게 출사표를 던진 기업이다. 지난해 출범한 쿠팡이츠는 최근 서울 전역으로 배달 가능 지역을 확대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사업이 확대되면서 문제도 제기됐다.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 기자회견에 나온 라이더 김영빈은 커피 다섯 잔을 배달하다 겪은 사고 사례를 전했다. 내비게이션으로는 25~30분이 걸리는데, 쿠팡이츠 앱의 배달 예상시간은 15~20분이었다고 한다. 앱이 제시한 배달 시간 안에 도착하려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부상을 입었고, 쏟아진 커피값도 자신이 물어내야 했다고 한다. 

새롭게 떠오른 기그 이코노미(임시직 경제)의 노동문제는 예상 가능했지만, 쿠팡이츠의 대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쿠팡이츠는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취재기자들에게 원고지 2장 분량의 짤막한 입장문을 전했다. 쿠팡은 입장문에서 배달의민족 등 다른 배달앱은 라이더들이 3~4건의 주문을 한번에 처리해 고객이 식은 음식을 받거나 배송기사가 위험한 환경에 처하지만, 쿠팡이츠는 배달 방식을 바꿨다고 전했다.

입장문에는 쿠팡이츠의 새로운 배달 방식이 기사의 안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담겨 있지 않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명하지도 않았다. 단지 경쟁사의 배달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쿠팡이츠의 ‘혁신’만 언급했을 뿐이다. 배달 예상시간 제한 등 기자회견의 이슈에 대해 추가 질문을 하자, 쿠팡 홍보팀은 “일일이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고 답해왔다.

쿠팡은 지난달 28일에도 부천 물류센터의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대해 예상치 못한 입장문을 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5일 만이었다. 

쿠팡 입장문은 특이하게도 소비자의 질의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작성됐다. 쿠팡은 “상품이 정말 안전한가요?”(첫번째 질문)로 시작해 “기존에 배송된 상품은 안전한가요?”(네번째 질문)라는 질문까지 내내 상품의 안전만을 강조했다. “배송직원들은 안전한가요?”라는 질문은 여섯번째에야 등장하는데, 이 답변 역시 “배송직원과 물류센터 직원들은 근무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였다. 결국 소비자와 마주하는 배송직원이 코로나19에 걸렸을 가능성은 없으니, 안심하고 택배를 받으라는 뜻이다. 쿠팡은 입장문 말미에 “ ‘쿠팡 덕분에 코로나 견딘다,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라는 자화자찬성 문장까지 넣었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해야 하고

그것은 가급적 정확해야 한다

모든 잘못을 고백할 순 없지만

여론을 무마하려 해선 안 되며

사태를 직시, 정확히 해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쿠팡 입장문을 ‘사과문’이라 표현했지만, 이 ‘사과문’에는 ‘소비자의 심려’에 대한 송구는 있을지언정 쿠팡에서 일하다 중병에 걸린 이들을 위한 위로나, 확진자 발생 이후 노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강행한 데 대한 사과는 없었다.

지난달 6일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재용의 사과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진행되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전후의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달한 시점에 나왔다. 재판과 수사 모두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여러 불법이 연루됐다는 혐의 때문에 진행 중이다.

정작 이재용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해 명확히 사과하지 않았다. 그저 많은 ‘질책’과 ‘비난’을 받았으며, ‘논란’을 일으켰다고 말했을 뿐이다. 도리어 이재용은 이제 20대 초반, 10대 후반인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는 말로 여론의 관심을 돌렸다. 수십년 뒤 있을지 없을지 모를 4대 세습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자신의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한 책임을 흐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적었다.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쓰는데, 이는 단지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은 문장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근접한 문장을 뜻한다고 했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 하고, 그 사과는 가급적 정확해야 한다. 여러 법리적 문제 때문에 모든 잘못을 세세하게 고백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잘못이 없었다고 강변하거나 사태와 무관한 사안으로 여론을 무마하려 해선 안 된다. 어떻게든 사태를 직시하고 그것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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