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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부인과 건강검진을 받는다. 부인의 사전적 정의는 결혼한 남자의 아내이다. 나는 그 누구의 아내도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적당한 단어도, 관련 전문병원도 따로 없기에 (산)부인과 병원에 간다. 10년 넘게 부인과 정기검진을 받고 있지만 초음파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부인과 검사를 받으면 의사가 언제나 출산계획을 먼저 묻는다. 없다고 하면 익숙한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아주 찰나지만 그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현대의학의 공백 혹은 무관심. 부인과 매뉴얼은 ‘이 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애를 낳을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 외의 상황에 관해선 관심도 없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의사들도 모른다는 느낌을 늘 받는다. 특히 자궁근종 같은 여성 질환은 흔해서 거의 감기로 취급되는데 그마저도 아이를 낳을 예정이 없다고 하면 갑자기 현대의학의 관심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현대의학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불편하면 제거하고, 아니면 말고.”

평생 불편했던 사람은 불편한 것이 뭔지 모른다. 생리통이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요즘 숨을 잘 쉬고 있냐는 질문을 받은 기분이다. 

“제 기억 속에 생리통이 1단계에서 1000단계가 있는데 요즘은 평균 237단계입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저의 237단계의 고통은 평균 여성의 17단계의 고통에 해당하는 것 같은데 그럼 생리통이 심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매번 이렇게 대답할 수는 없다.  

생리통이 남자들이 겪는 문제였으면 약이 통증별로 100단계로 세분돼 편의점에서 팔았을 거라고 망상하며, 증상은 있지만 원인도 모르고 해결 방법도 모르고 적당한 조치도 못 받은 채로 부인과 병원을 나왔다. 석 달 뒤 다시 검사하자는 말과 함께.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전국의 비출산 가임기 여성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 그 답답하지만 혼자 인내하고 있을 마음들의 합을 헤아려본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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