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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를 한 적이 있다. 적금을 넣으러 갔더니 은행 창구 직원이 펀드를 권했다. 저축은행이 투자은행으로 변신하여 개인들에게 펀드와 보험을 팔고 카드와 대출을 권하던 시기였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다달이 납입해서 만기에 찾는 방식은 같지만 이자가 좀 더 높을 거란 말에 그냥 ‘펀드로 해주세요’라고 했다. 몇 년을 모아 만기가 도래하고 보니 당초 1000만원을 모을 생각으로 부은 돈이 1200만원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마술에 홀린 것 같았다. 창구 직원은 ‘재테크’를 권했다. 목돈을 깨면 써버릴 것 같아 반신반의하면서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했는데, 돈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겁이 날 정도였다.
은행에서 받아온 투자안내서에 적혀있던 ‘브릭스(BRICs)’라는 글자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표지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노동자들이 활짝 웃고 있었고, 지도 위로는 철도와 도로가 뻗어나가고 공장과 빌딩이 올라가고 있었다. ‘고객님이 맡긴 돈으로 우리는 이런 나라들을 발전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잘살게 해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그건 속임수였다. 저축이 미덕이던 시대에 자란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금융시장은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다. 경제전문가들은 TV에 나와서 돈을 그냥 모으기만 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이기적인 일이라고 했다. 반면에 ‘투자’는 필요한 곳에서 돈이 제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혁신적인 경제활동이었다. 빚지는 일을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공격적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정신으로 무장되기 시작했다.
돈이 갑자기 불어나는 것도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가장 무서운 건 그 돈이 어디서 무엇을 해서 그렇게 돈을 불려왔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주 몰랐다고도 할 수 없다. 그 즈음에 나는 브라질의 숲이 불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소고기’가 될 소에게 먹일 곡물사료를 키우기 위해 거대 식품 자본이 주민들에게서 숲과 경작지와 삶터를 빼앗는다는 것을. 인도에서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농민들이 땅을 빼앗기고 자살하고, 중국에선 아이폰을 만드는 폭스콘 공장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철도와 도로, 공장과 빌딩은 지도 위에 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투자는 침략과 약탈의 다른 이름이었다. 잘사는 나라에서 들어온 자본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전쟁으로 몰아가는 발전의 불쏘시개였고, 금융가들의 전투 화력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생명과 맞바꾼 돈이 수익배당금이 되어 통장에 쌓였던 것이다.
거짓말처럼 불어났던 돈은 어떻게 되었을까? 거짓말처럼 다시 빠져나갔다. 빠져나갈 때는 더 무서웠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났던 돈이 다시 원금으로 돌아왔는데, 꼭 돈이 어디로 증발한 것 같고, 내 돈이 ‘반토막’ 난 것만 같고, 졸지에 날강도에게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게 애초에 ‘내 돈’이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숫자의 마술은 영혼과 양심도 훔쳐간다는 걸 알았다. 이후로 펀드니 주식이니 하는 근처에는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때가 2008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내 생애에 두 번째 금융위기였다. 그런데 지금 다시 ‘영혼까지 끌어 모아’ 주식에 투자한다는 ‘영끌’이 유행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최악의 경제위기라 느끼는 사람들의 체감을 비웃듯이 새해 들어 코스피 지수는 사상 최초로 3000을 넘어섰다. 어떤 사람들의 전쟁이 어떤 사람들에겐 축제인 세상이다. 역사 속에서 이런 세상을 나는 언제 보았던가. 전쟁과 파시즘을 맞이하던 시대가 이러했다. 착한 소비자가 저렴한 상품의 출처를 묻지 않고, 선의의 투자자들이 수익의 출처를 캐지 않고, 정부가 고삐 풀린 자본을 통제하지 못할 때, 돈은 자연을 파괴하고 산 목숨을 잡아먹고 덩치를 키운다.
‘녹색 투자’라도 마찬가지다. 기업 활동에서 금융이 중심이 될수록 청정기업이 된다. 자본은 언제나 깨끗하다. 지나간 자리가 검고 붉을 뿐. 제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지난 8일, 국회는 국민들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난도질해서 이렇게 더 죽여도 좋다는 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사람 살리자는 법을 기업은 ‘악재’라 불렀다. 기업이 ‘악재’를 면한 것과 코스피 지수 상승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일까? 생명을 갈아 넣어 이윤을 뽑아내는 거대한 죽음의 발전소는 오늘도 돌아간다. 우리가 가장 먼저 멈춰 세워야 할 발전소는 증권거래소인지도 모른다. 조용한 학살을 끝내려면.
채효정<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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