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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투기 의혹을 폭로한 것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민변의 최근 활동에 아쉬움이 많았는데, 그것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진로에 대한 번민 끝에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을 때, 지표가 되어 준 것은 군사독재에 맞선 인권변호사들이었다.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겁이 많아 열렬한 투사가 될 수 없다면, 그들을 돕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었다. 변호사가 되면서 선배들이 1988년 창립한 민변에 가입했는데, 동기 중에 같이 가입한 사람은 두세 명에 불과했다. 매년 300명의 법률가가 배출되는 시절에 1%만이 그런 길을 걸었다.

1990년대 후반의 민변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회원이 얼마 되지 않을 때라 모든 회원이 서로를 알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더라도 법정에서 수시로 공동변론을 했다. 법정 밖에서도 늘 같이 어울렸다. 그때 회원들은 돈이나 출세와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이 교체된 적 없는 시절에 인권변호사에게 큰돈이 벌릴 리도 없었고, 높은 자리가 주어질 일도 없었다. 국회의원이 된 회원은 극소수였고, 현실정치에 관여하는 회원은 단체를 떠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여러 극적인 순간들이 있었지만, 1997년 서준식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권운동가 한 명을 위해 100명이 넘는 회원들이 선임계를 제출했고, 열 명가량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법정에서 직접 변론했다. 변호사들이 너무 기세등등해 검사와 판사가 불쌍할 지경이었다. 그해 겨울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민변과 권력 간의 긴장은 유지되었다. 1999년 처음으로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되어 김대중 정부의 의혹을 수사할 때, 민변 회원인 최병모 변호사가 특별검사가 되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라고 하여 적당히 수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민변과 권력 사이의 관계는 회원인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크게 변화됐다. 강금실·고영구 등 여러 회원이 입각했고, 젊은 변호사들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들어갔다. 이때만 해도 민변은 아무리 인연이 깊은 정부라 하더라도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비판했다. 민변이 출세의 통로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잘 유지되었다.

그러나 박원순·이재명 등 주요 정치인이 민변에서 계속 배출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른 것 같다. 나는 이제 회비만 꼬박꼬박 낼 뿐 활동은 없는 회원이라서 내부의 분위기를 잘 모른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서 민변을 권력집단 또는 어용단체처럼 비난하는 글을 보면, 불편하면서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민변에도 진영논리가 작동한다고 느낀다. 문재인 정부가 잘못했을 때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왜 안 되는가? 그것이 야당을 도와주는 것이라서 자제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민변은 관변단체가 맞는 것 아닌가?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거칠게 진행할 때, 나는 적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검찰개혁을 열렬히 찬성한다. 문제점을 직접 경험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개혁에는 민주적 정당성과 함께 절차적 정당성도 있어야 한다. 목적이 옳다고 수단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런데 징계절차는 너무나도 법률에 맞지 않는 억지였다. 법원은 당연히 검찰총장의 손을 들어주었고, 정부의 정당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징계절차가 진행될 당시에 나는 친분이 있는 민변 임원에게 전화했다. 왜 엉터리 징계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느냐고 문의했고, 내부에서 의견이 갈려서 내보낼 수 없는 형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실망한 나는 월 10만원의 회비가 아까워졌다. 이토록 명백히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사안에 침묵하는 단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던 중 민변의 이번 행동은 걱정을 덜어준다. 정부·여당에 악재지만, 큰 긴장을 초래하는 사안은 아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30대를 자랑스레 기억할 수 있게 해 준 민변이 이 사건을 계기로 변화했으면 한다. 진보와 보수의 지형을 떠나 권력과 불화하고, 권리를 빼앗긴 자들의 참된 옹호자로 거듭났으면 한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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