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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만 고통이랴? 즐기는 일도 쉽지 않다. 게임을 하다가 밤을 새우고, 드라마 때문에 잠을 설치며, 웹툰과 웹소설을 읽느라 누워서도 폰을 놓지 못한다. 즐길거리가 너무 많아도 번뇌다. 그래서일까. 요즘 대세는 편하게 즐기는 창작물이다. 웹툰은 스크롤을 흘려 보내며 읽는다. 게임은 ‘방치형’이 한동안 유행이다. 가끔 큼직한 결정만 내릴 뿐, 게임 속 인물이 알아서 뛰어다니고 나는 지켜만 본다. 올해는 ‘하이퍼캐주얼 게임’이 유행하리라고 한다.

창작자는 고달프다. 슬렁슬렁 즐긴다는 말이 슬렁슬렁 만들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흘려 보내는 사람도, 지켜만 보는 사람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려면 연출이며 작화며 품이 많이 든다. 즐길거리끼리 경쟁도 치열하다. 개인 창작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미래는 어떻게 될까? 창작자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외국의 상황을 참고했을 터이다. 요즘은 그러기도 쉽지 않다. 창작 분야에서 한국이 한발 앞선 상태라 그렇다.

‘스낵컬처’라는 표현을 자주 본다. 이 말을 조사하던 중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은 이 말이 외국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온라인 매체 ‘와이어드’가 스낵컬처의 시대를 예측했다”고 쓴 몇몇 글을 우리말로 나는 읽었다. 그런데 영어권 설명은 다르다. 외국에서는 이 말이 한국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것 같다. 이 말을 한국사람들처럼 자주 쓰지도 않는다.

어느 쪽이 맞을까? 나는 2007년 3월의 ‘와이어드’ 기사를 찾아보았다. ‘작고 달콤한 미니 오레오’에 빗대어 ‘아이팟’으로 즐길거리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2007년이면 아이폰3GS는 물론이고 전설(!)의 옴니아2도 등장하기 전이다. ‘스낵컬처’라는 표현이 기사에 쓰이기는 하지만 맥락은 지금과 다르다. 이 말이 유행을 탄 것은 최근의 일이다. 확인해보니 2014년 2월 코리아타임스 기사의 제목이 ‘스낵컬처’였다. “웹툰 원작 드라마가 한국에서 인기”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굳이 영어로 이 말을 쓰는 것도 이상하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쓰인 ‘자투리 문화’라는 표현도 나는 좋아 보인다.

어쨌거나 나 같은 창작자한테 이 말의 뿌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가 보이지 않더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외국에 전파할 K문화라니, 백제시대 아직기와 왕인 이후 얼마만인가” 따위의 벅찬 뿌듯함에 취하기에는 한국사회의 창작 환경이 영 팍팍하다. 창작자와 플랫폼의 관계가 노동자 대 사용자인지 아닌지도, 무성한 말잔치에 가려 알쏭달쏭할 따름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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