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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째 집콕명절을 겪었다. OTT 정주행족이 연휴 중 좋은 작품을 SNS로 추천하는 새로운 문화활동이 활황인가 하면, 명절맞이 가사노동을 경감시켜줄 AI 탑재 인공지능 로봇청소기가 주변 물체를 스스로 식별하고 분류하며 자율주행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특히 이번 설연휴에는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 방역지침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가 많았다. 평소에는 기름지고 손이 많이 가서 엄두도 안 내는 음식들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던 차례상이 없어지면서 허례허식이나 불필요한 노동이 없어진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간증이 줄을 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짧은 연휴 기간 동안 양가 부모님을 모두 방문하느라 연휴 막바지에 몸살이 났다는 소리 대신 코로나19 시국으로 결혼 전 명절의 일상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기존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명절의 풍경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누군가의 고된 노동이나 과도한 희생으로 치러졌던 부담스러운 명절을 거둬내도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몇 차례 경험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뉴노멀의 바람이 명절 풍속도 바꿔 놓은 것이다.

한편 명절에 으레 행해지던 왁자지껄한 교류와 모임이 없어지면서 더욱 고독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다른 날도 아니고 명절인데 혼자 보내야 하는 것이 더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최근 코로나19 확산 사태 장기화로 심각해진 고독·고립 문제를 담당할 각료를 신설했다.

모일 수 있는 명절에도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가족, 제도가 허용하는 사람과의 모임이라야 명절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삶의 모습이 다양한데 어떻게 모든 관계가 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인정받을 수 있냐고 반문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의외로 제도권 밖이라는 굴레는 개인에게 큰 족쇄이다.

“사정상 혼인신고를 미뤘는데, 법적인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으니 연휴에 배우자가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수술 동의서에 사인도 못하더라고요.” “아이가 가족 모임에서 ‘한부모’라는 것을 더 강하게 경험하는 것 같아요. 가족모임에 가기 싫다고 해서 되도록 안 가고 있어요.”

2019년 1인 가구가 30.2%로 올라섰다. 결혼을 했지만 무자녀인 가구는 16.7%로 늘었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이랍시고 “결혼은?” “자식은?” 이렇게 묻지 않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도 만혼과 비혼이 저출산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어서 저출산 극복 정책은 임신·출산 및 자녀 양육 지원 정책, 주거 지원 정책 등에 머물러 있다.

저출산 문제는 사회경제적 요인과 문화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임신·출산 지원보다 가족규범이나 가족문화 등 문화적 요인이 결혼이나 자녀 출산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을 감안하여 ‘정상가족’ 중심의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동거 공동체에 대한 실증적인 조사는 전무한 상황이다. 통계청의 동거에 대한 수용도 의식 조사를 통해 비혼 동거 실천이 확산되고 있다는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다행히 최근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안을 발표하면서 자녀의 성(姓)을 결정할 때 아버지의 성을 우선적으로 붙이게 하는 부성 우선 원칙을 폐기하고 비혼 1인 가구나 동거 커플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명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이렇게 빨리 변할 줄 몰랐듯이 명절과 깊게 연관되어 있는 가족문화도 변화의 흐름을 누릴 때가 되었다. 필요 이상으로 좁았던 가족제도의 폭이 하루빨리 넓어져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갈 사랑을 마음껏 지지하고 싶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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