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책고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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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과학책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과학책고집’이다. 과학의 역사부터 살필 요량으로 <과학혁명>(피터 디어 저, 뿌리와이파리)과 <컨버전스>(피터 왓슨 저, 책과함께)를 3개월째 읽어나가고 있다.
두 권 모두 방대한 분량에 깊이까지 더한 책이라 어지간한 독서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혼자 힘으로 완독의 고지를 밟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함께 읽는다. 군말 없이 읽어내고 있는 회원들 대단하다. 자문역 김범준 교수(성균관대 물리학과)에게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과학사의 다양하고도 세밀한 국면들을 집요하게 톺아보고 있다. 앎의 희열과 지적 쾌감에 더해 만만치 않은 좌절과 절망감을 맛보면서다.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사를 읽는 중간에 수학소설 혹은 과학소설 읽기를 병행하고 있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되고 있다. 지금껏 읽은 소설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오가와 요코 저, 현대문학)과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이하 ‘골드바흐의 추측’,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저, 풀빛),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저, 엘리)다. 쟁쟁한 소설들이다. 특히 인상 깊게 읽은 건 <골드바흐의 추측>이다.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걸 만한 대상을 만난 적이 있는가? 그 대상에 과감하게 인생을 걸어 보았는가?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절망한 적이 있는가? <골드바흐의 추측>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들이다. 어떤 대상과의 인생을 건 운명적 만남과 선택, 그에 따른 고통과 절망이 얼마나 값지고 대단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1742년 러시아에 초빙되어 있던 크리스티안 골드바흐가 스위스 최고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훗날 골드바흐의 추측이라 부르게 된 명제다.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증명하려고 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리만의 가설’ ‘푸앵카레의 추측’ 등과 함께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는 이유다.
소설의 화자인 ‘나’의 삼촌 페트로스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수학의 신동이자 천재다. 당연히 그의 장래는 화려하게 빛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페트로스는 가족들에게조차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힌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탕진해 버린 탓이다. 소설은 골드바흐의 추측을 축으로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들과 얽히고설킨 페트로스 파파크리스토스(가상의 수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 치밀한 구성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읽는 재미를 더 한다.
실패와 성공이라는 이분법으로 보면 페트로스의 인생은 분명 실패한 인생이다. 그러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끝까지 고군분투한 그의 삶을 과연 실패한 인생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아름답고 위대한 삶이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과학은, 아니 세상사 모든 일은 성공뿐 아니라 실패에 의해서도 발전한다. 체 게바라 열기가 식지 않는 건 그가 성공한 혁명가여서가 아니라 생의 끝까지 ‘불가능한 리얼리스트의 꿈’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쿠데타군에 맞서다 장렬하게 산화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짧은 3년이라는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칠레 국민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각인된 건 그가 성공한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도전은 성공을 목적하지만, 도전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 안락한 삶 대신 도전의 길을 선택한 페트로스의 삶은 더없이 의미 있는 삶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누리 교수(<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의 저자)는 틀렸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것에 절망할 권리가 있다.” 소설 <골드바흐의 추측>과 ‘과학책고집’의 열쇳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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