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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계절이라 불리는 가을의 초입에 어울리는 소식은 아니지만, 책값이 오를 예정이다. 국제 펄프 가격과 해상 운임 인상으로 국내 주요 제지업체에서 9월 인쇄용지 가격 인상을 예고하였는데, 지난 1월과 5월에 이어 올해 세 번째 인상이고 이 인상폭을 모두 반영하면 지난해 대비 20~30% 오르게 되는 상황이니, 도서 제작비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이값이 책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라 하겠다.

물건값을 두고 싸다는 반응이 드물긴 하겠지만, 의식주, 즉 생존의 필요와 직결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책은 왠지 더욱 비싸게 느껴지기 마련이니, 책값 인상을 앞두고 출판사의 걱정도 적지 않다. 출판사와 책마다 사정은 다르겠으나 최소 10%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판단인데, 이 때문에 책을 찾는 손길이 줄어들까 고민하며 최근까지도 버텨온 상황이다. 아마도 이제부터 출간되는 도서에는 그간의 인상폭이 반영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물건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는 워낙 많다. 책 또한 종이값 등 원자재 외에 해당 도서의 고유성과 차별성, 유사 도서의 시장 가격, 가격에 따른 독자 축소·확장 가능성 등 여러 요인이 반영되는데, 전문 영역의 도서가 아닌 보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도서의 경우 가격에 따른 독자의 유입과 이탈을 적극 고려하게 되니, 평균값이 낮은 분야의 도서는 상승이 덜하고 평균값이 높은 분야의 도서는 더욱 크게 상승하게 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겠다. 이런 현실을 책값의 양극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간의 가격 상승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현행 도서정가제에서는 출간 12개월이 지나면 절차를 밟아 도서의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데, 단행본 전체로 보면 이런 재정가 제도가 그간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판매가 꾸준히 유지되지 않는 도서라면 가격을 올려 판매에 부담을 주는 선택을 하기 어렵겠고, 오랜 기간 판매가 꾸준히 유지되는 도서는 굳이 가격에 변화를 주면서까지 예측 가능한 상황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5년, 10년 전 가격으로는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판매를 하면 할수록 그대로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상황이니, 스테디셀러의 가격 상승도 명약관화한 일이다.

업계에서는 책의 꼴에도 변화가 이어질 거라 전망하는데, 양장과 무선, 컬러 인쇄와 단색 인쇄 사이에서 각각 후자의 비중이 늘어나고 표지에 멋을 더하는 각종 후가공이 줄어들 거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 방향으로 진행되어도 책의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겠지만, 글꼴의 세밀한 차이, 판면의 구성, 책장을 넘길 때의 감각 등 경험으로서 독서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그에 앞서 매력적인 물건으로서 구매 욕구까지 고려한다면, 가격 상승을 최대한 방어하면서 책의 물성이나 개발 과정의 비용을 줄이는 방향이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뾰족한 수가 있어서 책값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책값 상승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스스로도 종종 잊고 지내지만 이럴 때에야 책이 상품임을 새삼 감각하게 되어 상황을 정리해본 것이다. 물론 반대 방향의 생각도 이 지점에서 가능할 것이다. 가격에 의존하지 않는 책의 특성과 가능성은 무엇인지, 독자는 어떤 때 가격에 영향을 크게 받고 어떤 때 지출의 부담을 뛰어넘는 구매와 독서를 선택하는지, 책값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방식은 없을지. 책값이 오른다지만 아직은 계산기 너머의 책 이야기가 훨씬 궁금하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연재 | 책 속의 풍경, 책 밖의 이야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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