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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구나. 옥탑의 여름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구나. 물탱크의 여름이. 올 것은 알았지만 이리 정색하고 사생결단으로 달려들 줄은 몰랐지. 유월 초부터 폭염주의보라니. 몇 십 년 만의 때 이른 폭염주의보 발령이라고 하던데. 100년 만이건 1000만년 만이건 기록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기상예보를 듣지 않아도 내 몸이 알고 특보를 내리는데. 맑은지 흐린지 비가 오는지 자면서도 알 수 있는데. 물탱크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토록 정확한 기상예보관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는 이제 감지할 수 있다. 태양이 어디만큼 와 있는지. 허리께인지 어깨쯤인지 정수리 꼭대기인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안다. 너그러운지 의기양양한지 새침한지 포악한지.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일출 시각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안다. 오늘의 일출은 오전 5시11분. 새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빛의 기운이 돌기 전에 아침 회합을 갖는구나. 목덜미에 슬슬 땀이 차기 시작하는 걸 보니 드디어 해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구나.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고 넓게 열린 동향의 창이여, 참 정직하기도 하지.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하면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 때. 이제는 창을 닫고 더운 바람을 차단해야 할 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지만 태양이 아주 사라지지 않았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뜨겁게 달구어진 벽과 천장이 얼추 식으려면 어둠이 내리고도 한참. 자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가 졌다 말할 수 있으니. 그제야 내 눈에 서늘한 달이 들어오고 청량한 바람이 목덜미에 스민다.
아, 태양은 얼마나 밀접한가. 나는 태양과 뗄 수 없는 존재, 태양과 강력하게 연결된 존재. 내 몸이 우주라는 말을, 내가 우주의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나 또한 우주의 한 부분이라는 의미인 것을, 이제야 온몸으로 느끼게 만들어준 옥탑방에 감사를. 태양에 무한한 경의를. 그렇다, 나는 우주적 존재다. 광합성하는 식물들처럼 태양의 힘으로 살고 죽는 우주생명체다. 지구의 주인이라 자처하고 나선 기고만장한 인간으로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짜릿한 깨달음인가.
이제 막 하지가 지났다. 하지. 태양이 가장 가깝고 가장 높은 때.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 가장 길다는 것은 더 이상 길어지지 않는다는 얘기. 태양이 멀고 낮아진다는 얘기. 이제부터는 낮이 줄어들고 밤이 길어진다는 얘기. 하지를 향한 걸음이 동지를 향한 걸음으로 바뀐다는 얘기. 이 성급한 인간아, 하지 지났다고 동지 타령이냐. 태양의 위력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단 말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말씀은, 열대야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말씀. 여름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말씀. 지금부터가 바로 태양에 공손하게 굴어야 할 때라는 말씀.
블루베리·고추·능소화 등
‘옥탑 로망’을 완성하고 나니
나는 이토록 우주적인 존재
하지만 에어컨 없인 못사는
지구에 해를 끼치는 인간
그래서 나는 옥탑의 태양을 원망하는 대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태양의 힘을 맘껏 빌리기로 했다. 태양과 더불어 살기로 했다. 태양과 친한 것들을 가까이 두기로 했다. 옥탑의 로망이 무엇이었더냐. 뽀송뽀송하게 마른 빨래와 옥상정원 아니더냐. 좋다, 일단 널고 보자. 옷가지야 이불이야 수건이야 행주야 걸레야 수세미야, 이불 속까지 다 뒤집어 내다 넌 다음, 소파와 침대 커버를 벗기고 속싸개까지 벗겨 빨고 기어이 매트리스까지 끌어냈으니. 오로지 무언가를 널 목적으로 집을 구한 사람처럼 널고 또 널다 보니, 아무래도 올가을에는 고추도 사다 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쨌거나 빨래를 걷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볕에 잘 마른 빨래가 주는 안식을. 향긋하게 뽀송한 이불을 품에 안았을 때 감아 도는 뜨끈한 전율을. 이것이 바로 옥탑과 태양의 수혜다.
두 번째 로망 옥상정원. 무언가 키워서 뜯어먹을 생각은 없으므로 텃밭 대신 꽃나무들을 들였다. 손바닥 길이만 했던 유칼립투스는 어느새 내 허리참까지 키를 키웠고, 숨어들어온 줄도 몰랐던 박하 씨앗은 싹을 틔우는가 싶더니 이제 아주 밀림이 되었다. 어떤 녀석은 태양과 직접 대면하기를 싫어하고 어떤 녀석은 태양을 향해 온몸을 비틀고, 태양에 대한 식물의 취향인지 생존전략인지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블루베리는 익는 족족 참새와 멧비둘기가 와서 다 따먹어버리긴 하지만, 매일 아침 들려주는 노래값이라 생각하면 헗게 치는 편. 우주의 작은 존재들끼리 서로 그리 나눠먹자 기꺼이 내주었다. 호박덩굴과 고추와 쌈채소들로 채워진 옆집 마당과, 장미가 지기 시작하니 능소화를 피우기 시작한 앞집 마당과, 여남은 개가 넘는 장독을 보유한 뒷집 마당의 풍경을 공유하는 것은 덤. 우리는 모두 옥탑 마당에 올라온 태양의 전사들, 모두 함께 살아가며 옥탑의 로망을 완성하고 있나니. 나는 이토록 우주적 존재다, 뿌듯한 심정으로 외쳐보지만, 아무래도 제가 올여름 이곳에서 에어컨 없이는 도무지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저 지구에 해를 끼치며 살아가는 인간일 뿐이다 고백하게 되는, 물탱크의 여름.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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