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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불평등과 당사자들의 고난과 자타의 낙인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사회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무해하다. 선도적이라는 과학기술과 기업과 정치가 반자본과 생태 측면에서 공공의 선을 지향하는 경우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반자본적이고 생태적이다. 사람으로 사느라 무죄할 수야 없겠지만, 권력과 돈을 많이 가진 자들에 비해 죄나 악의 질과 양 측면에서 훨씬 적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생태 재앙을 맞아 물질만능의 소비와 편리와 여행을 좇아 살아온 대부분의 비노숙인들은 노숙인의 빈한하고 간소한 삶을 통해 진정한 뉴노멀을 성찰할 일이다.

요즘 들어 코로나19를 핑계로 한 무료급식 중단에 이어, 각 지자체와 철도공사와 경찰이 노숙인들의 앉을 자리와 잠자리를 빼앗고 살림살이와 깔고 덮는 박스와 이불을 쓰레기차에 쓸어가는 일들이 도처에서 더 심해지고 있다. 더 나아가 급기야 이 와중에 정부와 서울시가 노숙인들의 돈까지 빼앗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첫째는 긴급재난지원금 건이다. 정부의 재난지원금 발표 직후인 5월9일부터 이틀간 ‘홈리스행동’ 등 노숙인 인권단체들이 서울역 등에 거주하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중앙정부보다 앞서 집행되고 있던 지자체별 재난지원금을 받은 노숙인은 11.8%에 불과했다. 받지 못한 이유는 ‘주민등록지가 먼 데 갈 차비와 수단이 없어서’ ‘신청 방법을 몰라서’ ‘거주불명등록자(구 주민등록 말소자)여서’ 등이었고, 가구단위 지급인데 가족이 실질적으로 해체된 상태여서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없어 신청이 어려운 문제와 함께, 쪽방이나 고시원비가 가장 급하니 (기초수급자나 노인연금 수령자에게 지급한 방식인) 현금(혹은 통장 입금)으로 지급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5월12일부터 현재까지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관련 단체들의 수차례에 걸친 성명과 기자회견, 청와대와 행정안전부에 요구안과 질의 전달, 국민청원, 그리고 수많은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행안부는 지난 10일경에야 거주불명등록자도 거주지 인근 주민자치센터에서 신청하고 거주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외엔 어떤 조처도 없다. 정부가 자화자찬하는 99.7%의 높은 수령률의 뒤편에서 8월18일이 지나면 가장 빈곤층인 노숙인들의 재난지원금이 국고로 환수될 판이다. 거주불명등록자여서 수차례 거절당하다 지난 15일에야 지원금을 받게 된 서울역 노숙인 김모씨는, “여러분 덕분에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았다”며 10만원을 노숙인 단체에 후원했다. 

다음은 서울시의 노숙인 공공일자리 중 반일제(특별자활근로) 축소 개편안이다. 정규 예산 편성에 따른 사업 집행 중 느닷없이 오는 7월부터 변동시키겠다고 발표한 개편안의 핵심은, 노동시간 축소(1일 1시간, 월 1일 축소), 평균임금 감액(월 64만~81만원→월 48만~62만원), 주휴수당 미지급, 월차수당의 유급휴가 전환 등이다. 가장 비열한 점은 ‘주 15시간 미만, 월 60시간 미만’을 칼같이 맞춰 주휴수당을 회피하는 악덕 기업주들의 짓거리를, 서울시가 노숙인들에게 자행한다는 것이다. 주휴수당 미지급으로 인해 노숙인 노동자들은 줄어든 노동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임금을 삭감당한다. “고시원비가 월 30만원에서 35만원인데, 주거비 빼고 나면 나머지로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다시 길거리로 나오라는 말 아닙니까?” 지난 16일 오전 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노숙인의 일갈이다. 서울시의 노숙인 정책 목표는 노숙인들의 자활인가, 죽음인가? 빈곤은 발화(發火)를 품은 힘이기도 하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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