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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쩍 벌어졌다. 괴뢰, 만행, 박살, 쳐부수자.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 플래카드로 걸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 시대에. 이 뜬금없이 익숙한 단어와 색깔은 무엇인가. 시대물 세트장에 온 줄 알았다. 부끄럽지만 나도 저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반공웅변대회에서. 대략 삼사십년 전쯤 되겠다. 내가 하는 말에 대한 별다른 고민도 인식도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두 팔을 차례로 뻗어 올리며 외치던, 어린 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웅변대회에 나간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단지 목소리 때문에 차출된 것뿐이었다. 우리 반에서 목소리가 가장 크고 카랑카랑하니, 네가 나가라 웅변대회. 담임선생님은 나를 지목하며 그렇게 말했다. 칭찬인지 질타인지 권유인지 명령인지. 나는 좀 크게 웃고 명랑한 아이였을 뿐인데, 다른 아이들처럼 포스터대회나 글짓기대회에 단체로 참가만 하고 싶었을 뿐인데, 단지 웅변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반 대표가 되어 연단에 올라가야 한다니. 어쩐지 인정을 받은 것도 같고 벌을 받는 것도 같고. 어쨌거나 그렇게 교내웅변대회 반 대표 연사가 되었던 것이다.

거리질서 지키기 웅변대회였던 걸로 기억한다. 연단에 올라가면서 다리가 덜덜 떨렸던 기억도 난다. 써온 원고를 까먹을까봐 전전긍긍했던 것도. 고백하자면 아버지가 누군가의 교통사고 경험을 소재로 대신 써준 원고였다. 아버지와 함께 몇 번이고 읽고 외우고 연습했던 기억도. 어디서 보고 들은 대로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높이며 이제 끝났다 생각했던 것도. 이 연사 여러분 앞에 간절히 호소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문장이었을 것이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 말이 나오면 다들 박수를 쳐야 할 때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날 나는 고학년 선배들을 제치고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담임선생의 대단한 안목 덕분인지, 웅변대회에 타고난 목소리 덕분인지,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니, 다음 행로는 빤했다.

괴뢰·만행·박살·쳐부수자…
점점 더 과격해지는 구호
자기편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적이며 괴뢰집단이 돼버린 현장

그 후로 나는 각종 웅변대회에 학급 대표는 물론이고 학교 대표, 지역 대표로도 참가했다. 말하자면 잘나가는 웅변대회 연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거리질서 지키기 웅변대회’ ‘반공 웅변대회’ ‘나무심기 웅변대회’ ‘호국보훈 웅변대회’ 등 웅변대회는 수도 없이 많았다. 꽤 많은 상장을 학교에 가져다주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졸업식에서 공로상도 받았다. 더 전문적인 연사가 되기 위해 웅변학원에도 두어 달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배 속에서부터 목소리를 끌어내는 발성법도 배우고, 이 어린 연사의 클라이맥스를 위한 손짓과 표정도 배웠다.

웅변대회의 꽃은 단연 반공 웅변대회. 그만큼 식상한 대회였다. 공산당이 싫다고 말한 이유로 죽게 된 승복이 오빠는 이미 닳고 닳은 이야기. 어린애를 무참히 죽인 공산당을 소리 높여 규탄한다, 공산당을 타도하자, 우리 어린이들도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승복이 오빠처럼 공산당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다음은 일가 친척의 가슴 아픈 이야기.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의 아픔. 도끼만행이니 땅굴이니 간첩이니 여전히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북괴의 만행. 내용은 거기서 거기였지만 해마다 6월이면 전국 규모의 반공 웅변대회가 열렸고, 나는 그때마다 우수웅변원고선집을 참고한 원고를 가지고 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북괴의 만행을 규탄한다, 타도하자, 박살내자.

지금도 부끄럽다. 아무리 어린아이였지만, 나는 무얼 믿고 그런 말을 떠들어댔던 것일까. 어쩔 수 없이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웅변대회에 참가했던 것일까. 얼마나 더 호소력 있게 감동적이면서 자극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만 골몰했을까. 얼마나 큰 박수소리를 끌어내느냐, 어떻게 하면 더 큰 상을 받아갈 수 있을까, 상장과 상품, 뒤따라오는 인정과 칭찬, 그게 그렇게 좋았던 걸까? 그 박수소리에 취해 어린 앵무새 선동가가 되었던 것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표어와 구호들이다. 합시다, 하지 맙시다. 해라, 하지 마라.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걸어야 하고, 모두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거리를 두어야 하고, 계단에서는 뛰지 말고 지하철에 무리하게 올라타지 말고, 침을 뱉지 말고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고. 끊임없이 내걸어 주지시키고 겁박해야 가까스로 유지되는 세상. 이렇게 많은 표어가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의 방증. 그래도 우리 모두 다 함께 조화롭게 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라 인정해 본다. 하지만 구호는 점점 더 노골적이고 편파적이고 과격해지고 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으며, 분노하고 비아냥거리고 단합하고 거부하고 몰아낸다. 자기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적이며 괴뢰집단이 되어버린 웅변대회의 현장. 재개발에 응하지 맙시다, 평당 이천이 올라갑니다, 이런 플래카드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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