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비가 참 많이 온다. 세차고 질기게 오는 비가 무섭다. 세상에 물을 이기는 흙은 없다. 물은 금세 흙을 풀어놓아서 장맛비 열흘이면 땅이 주저앉을 수 있고, 산도 무너질 수 있다. 땅이 곤죽처럼 흘러내려 집을 덮치고, 마을이 잠기고 휩쓸려 초토화됐다는 뉴스가 매일 보도된다. 동북아 3개국을 오가며 초토화시킨 장맛비는 기억에 없다. 태풍도 이렇지는 않았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비가 잠시 그쳤는지 금세 안다. 매미 때문이다. 빗줄기가 그쳤다 싶으면 짝을 부르느라 악을 쓰듯이 울어댄다. 7년 동안이나 땅속에서 살다가 딱 한 달 동안 번식을 끝내고 죽는 매미에게 이렇게 긴 장마는 집단의 미래가 걸려 있는 위기다.
이상기후가 맞다. 날씨가 이상하다. 기온이 조금만 올라도 수온이 달라지고, 구름이 달라지고, 강수량이 달라지고, 식물이 달라진다. 산이 달라지고 들이 변한다. 붙박이 식물들은 이미 위기를 알았다. 자신의 씨앗을 바람에 날리거나, 벌과 나비에 잔뜩 묻혀 생존 가능한 곳으로 옮겨왔다. 땅 보고 사는 농부들은 식생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이제는 강원도 양구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다. 환경은 이미 변했다.
산업화 이후 기온은 약 1도 높아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기온이 1.5도만 높아져도 인간이 연구한 10만5000종의 생물 중 곤충의 6%, 식물의 8%, 척추동물의 4%가 서식지의 절반을 잃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종으로서의 인간도 위태롭다. 그나마 2050년까지 기온상승을 1.5도로 묶으면 다행이다. 유엔기후협약의 목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은 ‘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관측사상 최초라는 기상이변이 매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후위기가 내 일이 아닌 이유는 원인과 결과가 지역적으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중국, 1인당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인데,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로는 방글라데시를 꼽는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 지역도 위태롭다. 여기에 인프라가 약한 나라면 타격은 더 크다. 뒤처진 자가 가장 먼저 희생되어왔다. 기후위기는 반복하는 러시안룰렛 게임이다. 무사히 지나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차례가 올 것이다. 어느 나라도 안전하지 않다.
기후위기는 전염병과도 연결된다.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묻혀있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방출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가 100만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는 새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재해의 규모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K방역’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지만, 기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불린다. 2018년 발표된 OECD 국가 탄소배출량 비교(2017년까지)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이 10년 전과 비교해 탄소량을 8.7% 줄여왔지만 한국은 24.6% 늘었다. 온실가스배출량은 세계 7위, 1인당 배출량은 5위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의 기치를 걸고 나왔을 때 버클리대학 브리(버클리 국제연구소)는 당시 <녹색성장, 신앙에서 현실로>를 통해 한국의 녹색성장을 소개했다. 정태인은 “이명박의 녹색성장은 사실상 4대강사업과 핵발전 확대에 덧씌운 ‘녹색 분칠’임에 틀림없으며 브리(버클리대학 연구소) 역시 이런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한국에 주목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녹색성장을 ‘사회적 경제적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명시하고 사회 전반의 녹색 혁신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망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협동의 경제학>)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 역시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그린 뉴딜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담고 있음에도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가장 중요한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유엔을 설득해 송도에 녹색기후기금을 유치했지만 탄소배출량은 계속 늘어왔다. 게다가 한국은 아직도 해외 석탄발전소에 투자하고 있다. 안으로는 탄소배출량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감축한다고 하면서도, 밖으로는 석탄화력발전소 같은 사업에 투자가 이어지면 ‘무늬만 그린’이라는 비난을 받을 게 분명하다. 기후재앙 시대에 ‘그린’은 산업의 문제만은 아니다.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bj@kyunghyang.com>
'주제별 > 환경과 에너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칼럼]기후 제국 시대의 한반도 (0) | 2020.09.28 |
---|---|
[조운찬 칼럼]이번 장마, 기후재난의 예고편일지도 (0) | 2020.08.19 |
[경향의 눈] 기후위기가 내 일이 아닌 이유 (0) | 2020.07.30 |
[기고]하천 관리 일원화로 물 관리 일원화 완성을 (0) | 2020.07.28 |
[기고]뉴노멀 시대, 더 이상의 숲 상실 막아야 (0) | 2020.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