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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가적 차원에서 살림살이의 두 축인 정부의 세제개편안과 2023년 예산안이 발표된 이후 부자 감세와 취약계층 복지예산 축소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언론과 시민사회,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다루었지만 결국 이를 심의하고 최종 결정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다시 한 번 국정감사 이후 국회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세제개편안과 내년도 예산안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안전망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충분치 않은 보장 수준의 한계를 지닌 우리 사회안전망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재 우리 사회안전망으로는 가속화되는 인구·가구 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특정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를 부분적으로 개선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안전망 개혁을 위해서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 역시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 수준으로 인해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안정적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적절하게 지원하지 못하는 사회안전망의 구조적 원인을 개선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소득이나 서비스를 지원하는 정책은 아니지만 사회안전망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가 국세청의 ‘월 단위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와 통계청의 ‘포괄적 연금통계’ 구축이다.
월 단위 실시간 소득 파악은 비정형 근로형태 증가와 하나 이상의 단기 일자리를 가진 근로자 증가 등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이다. 다양한 형태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사업주나 기관은 인적 정보와 지급된 소득 정보를 월 단위로 신고해야 하며, 이를 통해 실시간 소득 파악이 이루어진다. 신고 대상이 되는 소득에는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비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사업소득과 기타소득 등 모든 유형의 소득이 포함된다. 이를 자영업자에게 확장하여 월 단위 매출이나 인건비와 임대료 등 필수 경비를 신고하도록 하면 완전한 실시간 소득 파악이 가능하다. 이것은 기존 과세체계에 따른 분기 또는 연간 단위 주기와 상관없이 일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지급되는 소득에 대한 신고 주기를 월 단위로 단축하는 것이다.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 구축은 코로나 위기 속에 고용안전망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한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과 함께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2020년 9월부터 논의를 거쳐 세법 개정을 통해 이미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이번 세제개편안에도 부자 감세 논쟁으로 인해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난 정부에 이어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 완성을 위한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주기 단축이 반영되어 있다.
이미 일용근로소득 및 원천징수대상 사업소득은 월 단위 소득신고가 시행 중이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서 2024년 1월부터 지급하는 소득에 대해서는 현재 반기 단위로 제출되는 상용근로소득뿐만 아니라 인적 용역 관련 기타소득에 대해서도 소득자의 인적사항과 지급 금액 등이 포함된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주기가 월 단위로 단축됨으로써 자영업자의 매출과 소득을 제외한 모든 소득은 월 단위로 파악되는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연금개혁의 시간을 앞두고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통계청의 포괄적 연금통계 구축이다. 연금개혁 논의를 위해 이미 진행되고 있는 국민연금 재정재계산 이외에도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등을 포함한 다층 노후소득보장체계 중심으로 구조적 개혁의 방향 설정을 위해 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동안 재정재계산 결과와 함께 연금제도별 가입자 및 수급 현황과 관련된 통계만을 활용하는 데 그쳤다면, 포괄적 연금통계를 통해 현재 노인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과 청년 세대에 대해서도 개인과 가구 단위로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그리고 기초연금 등 모든 연금 유형별로 가입 여부와 사각지대 정보, 연금급여액과 보장 수준 등을 통합적·입체적으로 분석하고 관련 통계를 제공할 수 있다.
사실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안전망 개혁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간 소득 파악을 묵묵히 추진하고 있는 세제실과 국세청, 그리고 개별 연금제도를 담당하는 부처를 설득하고 조정해가며 포괄적 연금통계를 구축하는 통계청과 여기에 참여한 관계 부처 역시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와 포괄적 연금통계 구축 모두 데이터 연계와 활용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개선해야만 사회안전망 개혁을 위한 근간으로서 완성이 가능하다.
우선 실시간 소득 파악 자료는 단지 고용보험만을 위한 것은 아니며, 세법 개정 이유를 소득 기반 고용보험 시행 지원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라 제시한 것은 유감이다. 2024년부터 자영업자를 제외한 모든 소득자에 대해 국세청이 월 단위로 파악하는 소득 자료는 고용보험을 넘어 모든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안전망 운영 패러다임 개혁에 아무런 제약 없이 활용되어야 한다. 실시간 소득 정보 활용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을 통한 대안적 소득보장체계 마련,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실시간 소득 파악 체계를 기반으로 소득세와 사회보험료 통합 원천징수 추진과 양육비 이행관리를 통한 한부모 가구 아동 복지 제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부처와 정책에서 연계 및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영업자의 매출 정보 및 필수 경비에 대한 실시간 파악과 사회안전망에 적용하는 방안도 서둘러 마련해야만 개혁이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통계청 포괄적 연금통계 역시 현재와 같이 국세청 소득 자료가 연계되지 않은 상태로는 노후소득 보장 실태 분석과 정책적 활용 가능성이 반감된다. 국세청의 소득 자료가 반드시 제공되고, 여기에 국민연금공단 등이 보유한 개인별 연금 가입 기간과 예상 연금급여액 정보도 결합되어야 한다.
부처 간 칸막이를 고려하면 어려운 일이지만, 국세청과 통계청이 사회안전망 개혁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식하고 완성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사회보험을 포함해 우리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연재 | 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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