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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미아리 고개

 

1971년, 2022년 미아리고개.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길이 있다
떠나는 자들이 있어 길이 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인 오랑캐가 ‘다시 넘어왔다’는 되너미 고개
일제 강점기, 조선인 시체가 ‘공동묘지’로 향하던 길
한국전쟁에서 철사 줄로 두 손이 묶인 채로 인민군에게 끌려갔던 길
서울의 유일한 북쪽 외곽 길
떠난 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한(恨) 많은 미아리고개

떠나는 자들은 발걸음이 무겁다
빈손으로 떠나는 자들을 가파르게 붙잡는 건
산 자들이 아니다
떠날 자들의 혼령이다
창자를 끊어내는 억울함에
이승을 맨발로 절며절며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

님이 가신 이별 고개 넘어가면 그만인데
산 자들은 앞길이 궁금하다
서울에 도심 재개발로 쫓겨난 시각장애인 역술인들이
1966년부터 미아리고개에 하나, 둘 모여들어
산 자들의 미래를 점쳤다
부부 이별 수
귀인을 만나고
아홉수에 삼재가 끼고
비명횡사의 사주팔자에
운명조차 주춤하며 뒤를 돌아본다

길이 있다
산 자들이 여기까지 걸어온 길이
저기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사진을 보면 상전벽해 비유가 어울릴 만큼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미아리고개가 지금은 고층아파트 뉴타운으로 변모했지만 점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5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치지 못한 건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정책’ 아닐까? 2022년 사진의 우측 하단에 분리수거 쓰레기봉투가 보인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연재 | 반세기, 기록의 기억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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