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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A씨는 생활하던 장애인 시설의 비리를 고발하고 시설을 ‘탈출’했다. 그의 아버지는 A씨의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A씨가 탈시설 활동가들의 꼬드김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시설에서 살아달라는 아버지의 애원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A씨는 자유를 향한 탈출에 성공했다.
몇 년 전까지는 이런 사례는 ‘탈시설 영웅담’이었지만, 이제 활동가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대세가 되었다.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이고, 보건복지부의 주요 장애인 정책 과제다. 그런데 최근 복지부는 탈시설에는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가 중요하다며 논점을 흐리거나 ‘탈시설’이란 용어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탈시설은 개인의 의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소수의 ‘탈시설 영웅’만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어서도 안 된다. 탈시설은 시설을 통해 유지되는 사회와 연결된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주거, 교육, 문화, 이동, 노동 등 전 영역에 걸쳐 장애인을 배제하고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시설을 통해 비가시화된다. 내 가족은 시설에 보내지 않겠노라 결심한 부모들은 온 가족의 삶을 갈아 넣는 것 외에 ‘비시설’의 삶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전국 1527개의 장애인 복지시설과 3만여명의 시설 입소 장애인은 갈 곳이 없어서,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자유를 포기한다.
두 해 전 토론회에서 만난 한 공무원은 폭염 시기 홈리스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시설 강제 입소를 언급하며 ‘예전에는 그런 방법으로 업무에 용이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권이나 이런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해 고충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얼떨결에 흉중을 고스란히 보일 때가 있는데, 사실 ‘시설의 필요’라는 것은 이 공무원의 솔직했던 답 그대로가 아닌가. 비효율적인 사람은 내친다, 멀리 둔다, 가급적 모아둔다, 관리 비용을 저렴하게 만든다. 시설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은 탈시설을 위해 10년 내 시설 폐쇄를 명시한다. 시설이 폐쇄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는 계속 시설에 입소하기 때문이다. 최 의원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은 2251명이지만 퇴소한 장애인은 843명이다. 지금도 시설은 계속 몸집을 불리고 있다.
탈시설지원법안은 발의 뒤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시설 폐쇄가 필요한 이들에 비해 사회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비리나 인권침해와 같은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 그곳에는 문제가 없다고 모두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16일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는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는 농성장이 생겼다. 이제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도록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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