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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놀랍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진상규명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공직자와 특권층이 정보를 불법적으로 독점하며 벌인 투기의 역사는 강남이 개발될 때부터 50년이 넘도록 반복되었다. 변하지 않은 현실이 슬프고 분노스러움에도 기시감까지 드는 이유는, 오늘의 사태가 비단 신도시 택지 개발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자산가들은 집을 보금자리가 아닌 투기 대상으로 삼는다. 이익을 위해 모든 자원과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호가 띄우기, 실거래가 허위 신고, 임대주택 공공사업에 대한 집단적 반대, 용역 깡패를 동원한 철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본은 집으로 몰려들었고, 한국은 부동산 계급사회를 이룩했다.

정치는 나아가 욕망을 부추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만 하더라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건물을 더 높이 올리겠다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다주택자의 배만 불렸던 10여년 전으로 회귀한 듯하다. ‘주거 사다리’를 통해 단계적으로 집을 마련하라는 정부의 말이 무색하다. 사태를 심화시킨 사람들이 청년들만 만나면 관용어처럼 ‘내 집 마련’을 약속한다. 부동산 이슈만 터지면 너도나도 ‘청년’을 언급하고 소비한다. 높은 지지율의 대권주자는 LH 사태를 두고 ‘청년’에 ‘공정’까지 끌어왔다. ‘공정’만 하면 청년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같이 눈속임을 시도한다.

미디어에서 유명한 모 건축과 교수는 칼럼에서 “청년들을 ‘월세 소작농’ 만들 텐가”라며 부동산 권력에 종속시키는 임대주택 정책을 비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물이나 전기를 국가가 통제 및 제공한다고 해서 국민을 국가에 종속된 소작농이라고 하지 않는다. ‘집’의 공공성을 존중했다면 월세든 매매가든 적정한 수준이 되었을 것이고, 소유냐 임대냐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해지자. 현실은 천문학적인 부채를 지고 집을 사야만 하는 청년이나 월세를 내며 사는 청년이나 모두가 소작농이다. 수십년치 임금을 가불한 내 집 마련은 말마따나 ‘이자 소작’에 불과하다. 갖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다. 집에 공공성이 삭제된 것이 문제다. 정·언·학계를 불문하고 집을 절대권력으로 삼는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을 뼛속까지 내재화하여, ‘집은 소유해야 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초점이 엇나갔다.

대안은 있다. LH 직원이든 자산을 소유한 개인이든, 주택 정책을 통해 공공이 기여한 개발이익을 적절히 환수하면 된다. 시장을 교란하고 투기를 부추기는 사람들을 강하게 처벌하고, 집의 공공성을 해치는 과도한 이익을 금지하면 된다. 집을 구매할 만한 자산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임대주택에서 안정적으로 살게 지원하면 된다. 청년들이 방법을 몰라 ‘내 집 마련’을 못하는 게 아니다. 탐욕으로 가득 찬 ‘그 세대’의 산물이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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