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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 5개월이 넘도록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자식 있느냐.” 2010년 12월31일, 함께 목숨을 끊은 노부부의 유서다. 그들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피하기 위해 가짜로 이혼하고, 한 사람 수급비로 둘이 함께 살고 있었다. 당시 1인 가구 수급비는 48만원 남짓, 이들은 매달 월세로 30만원을 지출했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해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때 가족들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게 하는 조항으로, 전국 약 90만명의 절대빈곤층이 이 조항으로 인해 빈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4월, 78세 김모 할머니는 폐결핵 진단에도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한 병원 입구에서 사망했다. 2012년 2월엔 양산의 남성이 수급에서 탈락한 뒤 자살했고, 8월에는 거제 이모 할머니가 ‘사람에게 법이 이럴 수 있냐’는 유서를 남기고 거제시청 앞에서 음독했으며, 11월엔 고흥에서 할머니와 손주가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잠들었다가 화마에 숨졌다.
최근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18년 7월 서울의 한 노인이 수급 탈락 후 목숨을 끊었고, 2019년 11월 인천에서 생활고로 목숨을 끊은 일가족은 부양의무자인 전남편에게 연락하기를 원하지 않아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포기한 채 살아오고 있었다.
죽음만이 문제는 아니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당해야 했던 모욕과 두려움, ‘가족관계 해체사유서’를 작성하며 삼킨 피울음, 부양의무의 이면이었던 간병살해와 가족살해. 가족에게 빈곤 사실을 차마 밝힐 수 없어 복지 수급을 포기한 채 거리와 시설로 떠돌아야 했던 이들의 시간.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이들의 수치를 먹고 자랐다.
7월14일, 정부는 2022년까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발표했다. 안타깝지만 이번에도 완전 폐지는 아니다. 의료급여는 제외한 ‘생계급여’만의 변화다. 고소득·고자산의 가족을 가진 일부는 제외한다고 하니 엄밀히 말하면 ‘폐지’가 아니라 큰 완화다. 느슨하게 매었다고 목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의 사적부양을 우선했던 사회보장제도와 결별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향해 또 한 번의 걸음을 내딛는 이 순간에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죽어간 이들을 떠올린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선언하고, 성과를 자화자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대신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는 세상에서 죽어간 이들, 고통받은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싶다. 곧 발표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위한 방향과 계획이 담겨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을 이행하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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