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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31일부터 서울시가 외국인 주민에게 재난긴급생활비 지원을 신청받고 있다. 통합콜센터를 운영하며 다국어 상담을 제공하고 G-1 비자까지 포함해 난민 신청자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은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한데 난민 신청 중인 성소수자 동료는 신청이 거절되었다고 한다. 생활비를 지원받으려면 소득신고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트랜스젠더 난민 신청자인 자신은 한국에서 일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당 기준은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에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서 소득활동이 있던 이들로만 한정한다. 서울시는 코로나19로 일할 수 없는 외국인을 지원한다고 홍보했지만, 신고된 소득활동이 없다면 지원 범위에 포함될 수 없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니 더 어려울 것이 없다는 셈법이었을까. 아니면 한국 경제에 기여한 외국인에게만 공적으로 지원받을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의도인가. 생계를 위해 왔다고 가짜 난민 낙인을 찍더니, 정작 한국에서 생계활동을 하지 않으면 가짜 시민이란 말인가. 서울시는 기준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러한 기준은 난민 신청자를 비롯한 이주민의 불안정한 생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원사업이 일방적으로 설계되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직장을 구하는 것이 누구보다 어려운 성소수자 난민, 장애가 있거나 트라우마와 정신적 압박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주민은 당연히 탈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재난 속에서 손상된 일상을 복구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준을 만들어 적용해야 한다는 필요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시의 자격요건은 지자체에서 인정하는 시민의 범주를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는 누군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굴레를 만든다. 더구나 그것이 소득신고 여부로 갈음될 때, 제공 기관과 지자체가 인정하는 시민의 가치는 과연 무엇인지 의심이 든다. 이는 재난에 손상된 구성원의 삶을 조력하겠다는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지 않는 외국인은 구성원의 자격을 가질 수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지원의 명목으로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을 같은 배에 태우지 않겠다는 잔인한 선언의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성원권을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난까지 겹치면 이렇다할 안전장치도 갖지 못한 채 거듭 위험에 방치되기 쉽다. 안정된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이들은 더욱 고립되고 가난해질 것이다. 의도야 어떻든 지원에 적용되는 배타적 기준은 생존의 연결이 누구보다 필요한 이들을 배제한다. 그것은 당신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음을 거듭 확인시키며 이들이 경험하는 재난을 공적으로 인정할 기회조차 박탈한다. 재난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대다수가 알고 있는 지금, 정부와 지자체의 선의가 오히려 불평등을 재생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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