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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도산서원의 퇴계매.

 

이 땅의 봄을 불러온 매화가 막 절정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최고의 매화라고 일컬어지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를 비롯해 남녘 마을 매화는 이제 서서히 낙화를 채비하는 중이다. 팬데믹 사태로 발길은 붙잡혔지만, 찬란한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남녘의 매화는 절정을 넘어서고 있지만, 한 주일쯤 뒤 절정을 맞이하는 매화가 있다. 비교적 북쪽에 위치한 나무여서, 남녘에 비해 조금 늦게 피어나는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퇴계매다. 도산매라고 부르기도 하는 매화다. 지금은 지폐 도안이 바뀌었지만, 한때 1000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던 퇴계매는 우리 국민이 좋든 싫든 가장 많이 바라보았던 매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우리 마음 깊이 각인된 나무임에 틀림없다.

퇴계매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이황에게 각별한 나무였다. 이황은 매화를 유난히 좋아했다. 상처한 뒤 홀로 된 마흔일곱의 이황이 충북 단양군수를 지내는 동안에 겪은 매화 이야기가 있다. 그때 단양 관아에는 미모와 기품을 고루 갖춘 두향(杜香)이라는 젊은 관기가 있었다. 이황의 인품에 감탄한 두향은 사랑의 증표가 될 여러 선물을 이황에게 전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자 두향은 이황이 거절하지 못하고 반드시 받아들일 선물을 톺아보고 마침내 기품을 갖춘 매실나무 한 그루를 선물했다. 예상대로 이황은 두향의 매화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임기를 마치고 다른 지방으로 떠날 때에도 매실나무를 옮겨갔다. 이황은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지금의 도산서원 자리에 두향의 매화를 옮겨 심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는 ‘저 나무에 물을 주거라’는 말을 남겼다.

그때 두향이 선물했던 매실나무는 안타깝게도 오래전에 고사했다. 이황의 후학들은 매화를 사랑했던 스승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도산서원 안팎 곳곳에 매실나무를 심고 정성껏 키웠다. 지금 도산서원 경내에서 봄의 교향악을 울리는 매화가 그 나무들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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