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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이나 장애인 피해자가 증언대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신뢰관계인으로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지만, 이를 지켜보는 법정 안의 판사, 검사, 변호사는 적잖이 당황한다. “아니, 중학생이라면서 왜 저렇게 말을 못 하고 표현이 안 되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임은 공부도 잘하고, 사랑과 관심 속에 똑 부러지게 컸겠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게 자라온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라는 말을 가까스로 삼킨다.
인권침해를 당한 장애인, 노인, 아동, 여성 중 아무도 도움 줄 사람이 없는 피해자만 무료로 법률 지원을 하는 이 일이 꽤 보람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지, 가장 보람 있었던 사건을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무기력했던 피해자가 스스로 힘을 내서 일어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모습을 보는 것이죠.” 그런데 왜 이게 대답인지 묻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사실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많은 국민이 염원하고 지지하는 이 정부의 중요한 개혁이고 나 역시 지지한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수사권 조정의 세부 내용 조율과정을 두고 대통령께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언급한 것을 계기로 과연 개정법은 피해자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경찰은 불송치 권한을 가지고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이 불송치 결정에 불만이 있는 피해자가 ‘이의제기하면’ 그때서야 검찰에 송치된다. 그런데 정말 피해자가 “이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가해자에게조차 제대로 이의제기한 적 없는 이들, 장애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이들이? “괜히 시작했어요” “다 똑같은 놈들이에요” 하며 체념하는 대부분의 피해자는 이의를 제기할 여력이 없다. 부모가 맘대로 합의한 사건에서 정작 피해자인 아동의 박탈된 이의제기권은 어떻게 보호될 수 있을까? 검찰의 송치요구권을 수사준칙으로라도 인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피고인의 법정 진술 한 마디로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 모두 없어질 수 있게 되었지만, 목격자가 없는 살인사건이나, 밀실에서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 단둘이 있을 때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어떻게 피해를 입증해야 할까? 피해자도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인데 왜 공판중심주의는 피고인에게만 유리하게 흘러가는가. 서둘러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무력화시키기보다, 피해자를 위한 공판중심주의 개선책과 더불어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하나 더, 대부분의 법·알·못은 이제 ‘검찰에 고소할 수 있는 범죄’와 ‘경찰에 고소할 수 있는 범죄’가 ‘검찰청법’으로 나뉜다는 것을 모른다. 용기를 쥐어짜서 고소장을 들고 가도 “우리가 하는 사건 아닌데요?”라고 해 발길을 터덜터덜 돌려야 하는 때가 곧 오는 것이다. 차라리 “모든 사건은 경찰에 고소하세요” 하는 것이 간명하다. 수사만 제대로 된다면 누가 수사를 시작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백업’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협력관계 구축일 수 있다.
입시가 복잡해지니 학생과 학부모는 입시지옥에서 괴로워지고 결국 입시 브로커만 돈 버는 세상이 되었다. 형사사법 체계가 복잡해지면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려운 법률용어와 절차 속에서 괴로워지고 결국 자칭 법률전문가들만 돈 버는 세상이 된다. 대학이야 전 국민이 다 가는 것은 아니지만, 형사피해나 가해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삶의 어느 순간 스며든다. 법률전문가만 알 수 있는 수사권 조정, 피해자의 입증이 더 가혹해지는 수사권 조정은 더 늦기 전에 재고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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