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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결정했다. 여기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크게 적은 인구당 의사 수를 늘려서 의사들의 보상 수준을 깎아야 한다는 경제학 개념까지 가세한 가운데 의사협회만이 메아리 없는 반발을 하고 있다. “현재의 연평균 의사 수 증가율은 OECD의 6배 수준이어서 조만간 의사 과잉이 된다”는 논리도 힘을 잃는 것은 그동안 의사협회가 평판을 잃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행보를 보인 업보다. 그런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의사협회에 비해 병원협회는 의사 수 증가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찬반을 떠나 의대 정원 증원의 목표가 공공의료의 확충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대한민국 병원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병원들의 연합체인 병원협회가 적극적으로 의사 증원에 찬성하는 것을 보면, 이는 증원된 인력을 모두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증원 인원이 중증·필수 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해야 하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인데 길게는 8년까지 이어지는 수련 과정이 끝나면 실제 복무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후 이들이 어떤 길을 밟게 될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된다. 대형 사립병원들 위주로 추가 인력이 투입된다면 이미 폭발적인 성장 일로를 걷고 있는 이들 병원이 날개를 다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병원들이 수익 증대를 위해 의사들에게 과잉 진료를 유도하는 현실에 대해 정부는 어떤 제약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병원으로 의사들이 더 많이 몰린다면 의사끼리의 과당 경쟁 분위기 안에서 진료 자율성을 침해당하는 일이 더 빈번해질 수 있다. 결과는 수가가 높은 검사에 치중하지 않고 보상 수준이 낮은 ‘진료의 질’을 고수하는 의사들의 도태이다.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에게 평생 공무원의 신분으로 복무하는 의무를 지우는 것이 과격하지만 유일한 대안이다. 그리고 이들이 받게 될 급여 수준을 투명하게 제시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서는 한번도 검토된 바 없는 의사 집단의 수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제시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의료의 본질인 진찰과 상담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적정 수준의 보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검사만 과보상해주는 현 수가체계의 왜곡을 수정할 논리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적절한 시설 투자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정책적 뒷받침 없이 무조건 인원을 늘려서 공공의료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무모하다. 경제성 평가는 물론 효능조차 제대로 검정되지 않은 수많은 바이오 기술들이 의료 현장을 점령하는 현실, 그리고 의료를 산업이라 하며 그것을 규제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보건당국을 바라보면 미래는 암담하다. 비근한 예가 지금 혹독하게 겪는 부동산 사태이다. 주거 복지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려는 진정성과 정교한 장치 없이 주택 공급만을 늘린 상황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토건세력이었다. 국토교통부가 토건세력의 뒷배 역할을 해온 것처럼 보건복지부가 병원들의 의료 장사 뒷배 노릇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의 첫걸음은 무엇이 의료의 본질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 그리고 이런 본질적인 행위를 추구하는 의사들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을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어야 한다.
<김현아 | 한림대 성심병원 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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