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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마감을 사흘 앞두고 아이템을 바꿨습니다. 커버스토리는 분량이 많은 편이라 보통 3주 전에 주제를 정한 뒤 취재를 하고 글쓰기에만 2~3일을 매달립니다. 한참 마감을 해야 할 시간에 바꾼 겁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기사는 산업재해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었습니다. 바꾼 기사는 코로나19를 명분으로 해고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 이야기입니다. 모두 노동사건입니다.
갑자기 대상을 바꾼 이유는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문제가 좀 더 시급해보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준비하려던 기사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써도 되지만, 아시아나케이오 해직자들은 당장 오늘 밤도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농성장은 이미 두 번 철거됐고, 제가 찾아간 17일엔 텐트를 치우지 않으면 또 철거될 것이라는 계고장이 붙었습니다. 옆에서 보는 저도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토요판팀은 정해진 출입처가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하듯 아이템을 찾습니다. 자세히 헤아려 보진 않았지만, 기자생활을 하며 노동사건을 많이 쓴 편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관심이 많이 가기도 했지만, 그만큼 중요한 노동사건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산업재해 기사도, 부당해고 기사도 멀리서 보면 내용은 비슷합니다. 일하다 죽거나 다치거나 병들었고, 산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사와 노동자의 긴 싸움이 시작됩니다. 조사결과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의 문제가 발생됩니다. 노동자와 가족들은 눈물로 호소하고, 회사는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만 벌금 정도를 내고 빠져나갑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씨의 사망사고가 일어난 뒤 사람들은 놀라고 분노했으며,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노동자들이 떨어지거나 끼어 죽는 사고가 반복됐습니다. 끔찍한 산재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라며 잠깐 슬퍼하고 분노하다 금세 잊습니다.
부당해고 사건 역시 지겨울 정도로 많습니다. 회사가 경영위기를 명분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합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노동자들은 시위에 나섭니다. 부당해고구제신청, 소송 등 행정·사법절차도 거치지만 법은 멀고 가난은 가깝습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소송과정 동안 노동자들은 먼저 거리로 나가 몸으로 할 수 있는 투쟁을 다 해보다가 포기하거나 몸과 마음에 병이 듭니다. 피해자들이 집회·시위 과정에서 만난 공권력의 모습은 적어도 시민의 편은 아니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보면,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야기가 알려진 이들은 조금 덜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2019년 고용노동부 발표를 보면 노조조직률은 11.8%입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어디로도 향하지 못하고 흩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노동기사야?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네, 저도 지겹습니다. 그만 쓰고 싶습니다. 옛날엔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제 노동분야는 쓸 만한 기사아이템이 없다고 기분좋은 불평을 해보고 싶습니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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