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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다시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일일 확진자가 급증하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깜깜이 환자’ 비율이 20%를 넘어서고 있다. 2차 대유행의 입구에 서 있는 듯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구적으로도 코로나19 대재난은 계속된다. 8월24일 기준으로 지구적 차원에서 확진자는 2300만명을, 사망자는 80만명을 넘어섰다. 확진자의 경우 미국은 500만명을, 브라질과 인도는 300만명을, 러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페루·멕시코·콜롬비아는 모두 50만명을 웃돈다. 이 중 멕시코는 10% 넘는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보급돼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수백만명이 더 사망할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전망이 안타깝게도 사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 정도의 충격이라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난 20세기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필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차례 세계대전이 ‘정치·군사적 대참사’였고, 1929년 대공황이 ‘경제적 대참사’였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정치·경제는 물론 생명과 건강을 아우르는 ‘사회적 대참사’다. 지난 8개월 동안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에서 제도까지의 변화는 이 팬데믹의 위력을 생생히 실감하게 한다.

코로나19는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론>에서 말한 위험의 하나다. 위험사회론의 핵심 테제는 두 가지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위험이라는 것과 위험에 맞선 안전이 기존의 평등이라는 가치에 앞선다는 것이다. 후자의 테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전자의 테제에 대해선 이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벡이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제시한 기후변화, 금융위기, 테러리즘만큼 21세기 우리 인류에게 직접적 위험을 안기는 것은 없다. 여기에 이제 팬데믹이 새롭게 더해지는 낯선 시대의 문턱을 인류는 넘어서고 있다.

물론 벡이 전하려는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인류가 직면한 위험의 현재적 성격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에 있다. 현대사회 이전 ‘오래된 위험’은 자연재해·전쟁 등에서 비롯됐지만, 20세기 후반 인류가 마주한 ‘새로운 위험’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사회발전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지구적 기후위기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벡이 강조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근대화가 가져온 우리 삶의 사회적 조건이 변화됐고, 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적극적 대응이 요구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벡의 위험사회론에 나 역시 동의한다. 여기에 더해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위험으로서의 코로나19 팬데믹이 갖는 특징들이다. 먼저 오늘날 오래된 위험과 새로운 위험의 구분은 큰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다. 전염병과 같은 오래된 위험도 세계화 및 정보사회와 결합하면 단숨에 ‘지구화된 위험’으로 부상한다. 그 위험은 새로운 위험에 결코 못지 않은 충격과 공포를 안긴다. 게다가 이 팬데믹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기후위기를 고려할 때, 오래된 위험과 새로운 위험의 경계는 점점 불분명해지고 있다. 이 팬데믹이 낳고 있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지켜볼 때, 이제 인류는 오래된 위험과 새로운 위험이 결합하는 ‘복합 위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한편 오래된 위험이든, 새로운 위험이든 그 위험이 갖는 개별적 성격을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기본적으로 의학적 사건이다. 누구나 주의하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그 위험이 곧바로 전가된다. 따라서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밖에 없다. 더하여, 이 팬데믹은 이 지구에서 가장 작은 존재인 바이러스 앞에서 가장 문명화된 존재인 인간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를 새삼 발견하게 한다. 언론인 안희경과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 이 팬데믹은 새로운 사실, 즉 혐오가 우리를 갈라놨다면, 취약함은 우리를 뭉치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다. 함께 모두 마스크를 쓰고 더불어 방역 수칙을 지키는 연대의 정신을 발휘한다면, 이 가공할 바이러스의 공격에 맞설 방어의 최저 기본선은 구축할 수 있다.

현재 가장 중차대한 과제는 우리 생명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코로나19 폭풍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의학적 방역과 경제적 방역이다. 이 복합적 위험 시대에는 정부의 역할도, 개인의 역할도 모두 중요하다. 분명한 사실은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 함께, 더불어 연대할 때만 이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2차 대유행의 우려 앞에서 연대의 정신과 실천에 대한 한 사회학자의 간절한 소망을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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