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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장이라는 직책, 볼수록 어려운 자리다. 공직사회의 기강을 세우면서 활력도 유지하고, 나아가 국가 재정의 효율성까지 챙겨야 한다. 그러면서 한 치의 의심도 사지 않는 광명정대한 처신으로 대통령부터 두루 만족시켜야 한다. 이회창, 한승헌, 김황식 등 당대의 인물들이 거쳐갔지만 ‘미스터 감사원’으로 불리는 사람이 없는 연유이다. 굳이 비슷한 사람이라도 찾으라면, 재직 시 안팎으로 서릿발 같았고, 퇴임 후에도 청렴결백했다는 박정희 때 이석제 감사원장(재임 1971~1976년)을 감사원 원로들은 꼽는다. 50년래 그만 한 감사원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작금 최재형 감사원장의 곤경은 새삼스럽다고 할 수 없다. 최 감사원장은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의 정당성을 따지는 감사 도중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가 여권의 비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이 어떻게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뒤집으려 하느냐는 것이다. 반면 보수언론은 그를 부당하게 정권의 탄압을 받는 애국자로 추켜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나는 다른 면에 주목한다. 헌법 기관장의 독립성을 둘러싼 의미 있는 실험으로 접근하고 싶다.

헌법 제98조는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법 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했다. 이어 인사와 조직, 예산 편성에 있어 감사원의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감사원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헌법이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 감사원장의 최근 언행을 시비 삼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그가 친원전 시각을 바탕으로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지만, 실제로 그런지 따져볼 여지가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 감사 결과’를 내놓고자 하는 입장을 감안하면, 탈원전 정책에 대해 캐묻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최 감사원장이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비판하는데, 이 역시 못할 말이 아니다. 다른 기관이 아니라, 행정 행위의 적부를 독립적으로 엄정히 따지는 감사원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무조건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기관의 존립 취지에 어긋난다. 무엇보다 헌법 정신을 따르라는 게 촛불정신이 아닌가.

김영삼-김대중 정부 교체기에 감사원을 취재하며 인상 깊게 들은 말이 있다. 감사원장의 별칭이 ‘7분의 1’이라는 것이다. 감사원은 감사원장을 포함한 7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데, 감사 결과를 결정하는 자리에서만은 원장도 일개 위원이라는 것이다. 사무처를 지휘하는 감사원장이 감사관들에게 엄정한 감사를 독려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 지시가 정당하려면 감사원장이 자신을 객관화해야 한다. 최 감사원장에 대입하면, 원전에 대해 균형 있는 인식과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에너지에 대한 관점도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국정과제를 놓고 정부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면 대통령에게 사전에 보고하도록 한 절차도 지켜야 한다. 최 감사원장이 이런 직무상 의무를 다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사심이 없다는 이유로, 또 내가 옳기 때문에 헌법이 부여한 독립성만을 무제한 누리겠다고 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런 식이라면 감사원장의 전횡은 어떻게 막느냐는 또 다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된 양건 감사원장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 ‘정치감사’ 논란 속에 중도 사임했다. 당시 감사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세 차례 감사했는데, 마지막에는 앞선 두 감사와 정반대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감사원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여권은 최 감사원장에 대한 압박을 멈춰야 한다. 최 감사원장이 계속 자리에 남는 것도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최 감사원장을 존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 감사원장의 실험이 여기서 중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 감사원장처럼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가진 기관장도 용납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코로나 대응에서 사사건건 자신에 반대하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를 내치지 못하는 그 시스템을 우리도 그만 부러워하고 정착시킬 때가 되었다. 그 시험대에 오른 것은 최 감사원장만이 아니다.

<이중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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