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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화문집회가 얼마나 끔찍한 국가적 참사로 확산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분명한 것은 그 집회가 헌법정신을 크게 훼손했다는 점이다. 헌법은 포괄규정이고 단서조항이 많아 그 정신을 전체로 존중하지 않고 부분만 강조하거나 정파적으로 해석하면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수단이 되기 쉽다. 광화문집회는 헌법 34조, 21조, 20조뿐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헌법 1조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헌법 34조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우선 국가가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법원과 검찰도 국가권력의 핵심인데 어떤 판사는 전광훈 목사를 보석으로 풀어줬고 한 판사는 집회를 허가했다. 광화문집회 이전에도 보석조건을 위반했는데 검사는 취소청구를 안 했다.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되, 타인의 명예나 사회윤리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제한했다. 광화문집회는 21조의 전반부만 금과옥조처럼 악용한 결과였다. 세계가 찬탄한 촛불집회가 보여준 민주와 공화의 정신은 사라지고, ‘소수독재’와 혐오, 편 가르기가 난무했다. “4·15 총선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사기극”이니 “문재인을 탄핵하자”는 주장이 박수를 받았다.
전광훈 목사와 극우 유튜버들은 방역협조를 정권협조로 여겼다. 신천지 이만희 교주는 사죄하는 척이라도 했지만 전 목사는 방역당국에 저항하면서 예배방해와 종교탄압으로 몰고 갔다. 더 큰 문제는 사랑제일교회만의 일탈이 아니라 상당수 개신교회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점이다. 광화문집회 운송버스 인솔책임자 111명 중 41명이 목회자였는데 대부분 ‘정통’ 교단 소속이다. 목사들은 “문재인 때문에 지금 나라가 공산화 직전”이라며 “전광훈 목사를 보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 목사는 세련되지 못해 도드라졌을 뿐이다.
헌법 20조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되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했지만, 개신교회 상당수는 극렬한 방식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는 구한말부터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단의 집중선교 대상이었고, 남북 분단 과정에서 월남한 사람들은 영락교회 등을 설립하고 서북청년회를 결성해 정치에 개입했다. 기독교 반공주의로 무장한 서북청년회는 살인·고문·강간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나 이승만 정권의 비호로 처벌받지 않았기에 지금 그 후신을 자처하는 단체까지 생겼다.
23일에도 수천개 교회가 대면예배를 했다. 39개 교단이 가입한 한국교회연합은 예배금지 명령을 거부하면서 정부의 명령보다 종교의 자유가 더 중요하며 모든 책임을 진다고 했다. 코로나 진단·치료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하는데 교회는 세금도 안 낸다. 일부 개신교도는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만 중요할 뿐 이웃이든 국가든 중요한 관계로 보지 않을 만큼 배타적이다.
전광훈 목사를 극우세력의 중심인물로 만든 것은 종교와 정치의 유착이다. 작년 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전 목사가 주도한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의 청와대 앞 집회에 찾아가 죽기를 각오한 공동투쟁을 다짐했다. 황 대표는 팬데믹 상황에서 의사파업을 주도하는 최대집 의사협회장과도 결탁했다. 미래통합당에선 전·현직 의원과 천안시 등의 당원 상당수가 광화문집회에 참석했다. 정치와 특정 종교가 유착되면 타 종교는 차별을 받기에 심각한 갈등요인이 된 나라가 많다.
수구세력 총집결의 연락책은 언론이었다. 광화문집회 광고는 보수신문에 36회나 실렸는데, 조선이 15회로 가장 많고, 동아 11회, 중앙 10회였다. 집회 전날은 두 면을 털어 ‘문재인 탄핵의 날’에 모이자며 지역별 버스시간표까지 실었다. 광고에는 허위조작정보도 많이 포함됐다. 신문광고윤리강령은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신문의 품위를 손상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으나,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조선일보는 광화문집회가 코로나 확산 주범이 아니라는 기사까지 실었다.
돌림병 코로나는 한국에서도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공동체의 운명이 바이러스에게 맡겨졌다. 바이러스의 숙주는 수구적인 일부 법원과 검찰, 개신교, 정당, 언론이었다. 헌법과 민주공화국의 배신자는 늘 ‘사회지도층’이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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