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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눈여겨봤다.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포퓰리즘의 미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표적인 포퓰리스트 정치가이기에 대선의 결과가 포퓰리즘의 미래를 엿보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국가적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것이기에 대선의 결과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를 전망하게 할 것이라고 역시 생각했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하여. 선거 직전 나는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그럭저럭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아주 팽팽했다. 바이든 후보와 트럼프 후보 모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7000만표 이상 획득했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이념적·인종적·지역적·종교적 균열이 너무도 분명했다. 미국은,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주조한 개념인 ‘한 국민(one nation)’이 아니라 ‘두 국민(two nations)’으로 이뤄진 나라처럼 보였다. 대선 결과가 함의하는 바는 트럼피즘, 즉 트럼프식 포퓰리즘이 쇠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1세기 포퓰리즘은, 정치학자 얀 베르너-뭘러가 지적하듯, ‘엘리트 대 국민’이라는 새로운 균열을 부각시켰다. 우파 포퓰리즘은, 저널리스트 존 주디스가 강조하듯, 이 균열에 ‘내집단 대 외집단’의 균열을 결합시켰다. 외집단은 이민자·난민·유색 인종이었다. 트럼프식 포퓰리즘은 리버럴 민주당을 엘리트주의로 공격하고, 백인 중심과 미국 우선의 애국주의를 내세웠다. 민주주의 제도보다 정치적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포퓰리즘의 ‘인물의 정치’가 미국에선 성공한 비즈니스맨 ‘트럼프’라는 상징으로 표출되고 집약됐다.

선거가 끝난 후 사실상의 승리를 확인한 바이든 후보는 첫 일성으로 ‘통합’을 내놓았다. 21세기 어느 나라든 가장 중대한 과제가 저성장에 맞선 혁신경제, 불평등에 맞선 격차 해소, 찢겨진 공동체에 맞선 사회통합임을 고려할 때, 바이든 후보의 메시지는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후보의 지지층이 견고하다는 선거 결과를 주목할 때, 포퓰리즘이 통합의 정치라기보다 분열의 정치임을 지켜볼 때, 무엇보다 정치가 레토릭 이상의 정책으로 구현돼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두 국민’의 미국이 ‘한 국민’의 미국으로 거듭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하여. 내년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정치적으로 새로운 대외정책을 선보일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한 미국 우선주의는 국내적으로 호소력이 컸었더라도 국제적으로는 전후 미국의 헤게모니, 즉 팍스 아메리카나를 위태롭게 해왔다.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 후보가 손상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시키겠다고 주장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예상해볼 수 있는 ‘민주당 정강 정책 2020’의 경우 대다수가 국내 문제에 집중해 있었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에 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바이든 후보가 발언한 바를 주목할 때, 바이든 정부 대외정책의 기본 방향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민주적 국제 규범을 복원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에 대해선 ‘협상과 압박’의 이중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핵 확산 방지, 기후변화 대책 등에선 중국과 적극 협상하겠지만, 인권 유린, 국제 규범 파괴 등에 대해선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이점에서 바이든 후보가 제안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복구하는 데 하나의 전환점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군사적 우위라는 미국의 ‘펀더멘털’을 중시할 때, 팍스 아메리카나가 쉽게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다. 2020년대에 미·중 경제전쟁이 치열해지겠지만, 중국이 특히 미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따라잡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바이든 정부가 인권과 환경을 앞세우더라도 경제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하여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미국의 혼란스러운 대처는 미국식 국가운영과 생활방식에 대한 재고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당분간 ‘힘과 헤게모니’의 이중 경쟁이라는 G2 체제를 더욱 공고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2020년대에 포퓰리즘과 팍스 아메리카나가 세계사회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두 변수임은 분명하다. 이번 미국 대선은 이 두 변수의 중대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한 사회학자의 생각을 여기에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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