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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왔다. 엉금엉금 발을 내디뎠다. 아내는 눈길에 걷는 나를 보면 항상 웃는다. 미끄러질까 봐 무릎을 잔뜩 구부리고 보폭을 신발 사이즈의 절반 정도로만 유지하면서 발에 힘을 엄청 주고 걷는 모습이 어색해서다. 신문배달을 할 때의 버릇이 참으로 오래간다. 폭설이 내린 빙판길에서 오토바이를 타면 두 발이 보조 타이어나 마찬가지고 내리막길을 걸을 땐 발바닥에 꾹꾹 힘을 줘야 하는데, 그만둔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몸이 기억한다.
눈만 오면 그 시절이 생각난다. 배달시간이 날씨 때문에 곱절로 늘어나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었던 배달원들은 함께 라면을 끓여먹으며 하얗게 변한 세상을 원망했다. 모두가 고시원에 살 정도로 비슷한 계층이니 신세한탄도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더 안쓰러웠던 동료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경한 경식이란 이름의 친구였다. 신문배달의 강도도 만만치 않은데 주말에는 중식당에서 배달까지 한다니 스무 살 청년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치곤 참으로 무거워 보였다.
경식이와의 짤막한 추억이 있다. 눈이 엄청 내린 날이었다. 일을 마치니 이미 신촌역 6번 출구에서 서강대로 향하는 오르막길에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저들 중 혹시나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부끄러움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등에 ‘○○일보’라고 큼직하게 적힌 외투를 입고 손엔 여러 신문을 들고 걷는 내 모습을 감추고 싶었나 보다. 어색함을 감추고자 고개를 푹 숙이려고 하는데 미끄러진 오토바이, 나부끼는 신문들, 그리고 아직 배달이 서투른 스무 살 경식이의 초조한 표정이 10여m 앞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얼른 다가갔다. 서울 한복판에서 떨어진 신문을 줍고 정리하는 건 경험하지 않으면 그 민망함의 강도를 모른다. 그래서 ‘나는 너의 동료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나 보다. 오토바이를 고정시키고 비닐포장이 된 신문 하나를 뜯어서 적재하는 판에 펼쳤다. 눈이나 비가 오면 신문에 비닐포장을 하는데 이걸 그대로 쌓으면 미끄러워서 다 흘러내린다. 그래서 맨 아래와 위에는 신문종이를 깔아야만 마찰력이 생겨 고무줄로 묶었을 때 효과가 있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게 오토바이 뒤에서 중심을 잡아주면서 내리막길에선 절대 액셀 핸들을 돌리지 말고 기어를 1단으로 한 채 두 발을 내딛고 내려오라는 조언도 곁들였다. 고맙다는 경식이에게 “억울해서라도 다치면 안 돼!”라고 말을 건넸다.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한 노동이니 뭐니 그러지만, 세상 사람들 눈에는 유령처럼 보이는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니 알아서 조심하자는 말이었을 게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신문배달부는 거의 사라졌지만 ‘라이더’라는 이름의 배달노동자들이 거리를 누빈다. 눈만 오면 그들의 고충을 드라마틱하게 다루는 기사들은 여지없이 등장하지만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실질적인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사람들은 눈 오는 날은 배달시키지 말자는 정도의 동정심은 가지지만, 막상 노동자들이 힘을 뭉치고 목소리를 높이면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의 아우성’이라면서 선을 긋는다. 그러니 거리에는 무사히 퇴근하는 걸 운에 기대어야 하는 노동자들로 넘쳐난다. 다치면 억울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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