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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개척시대가 다시 오는 걸까. 지난주 미국 텍사스는 21세 이상은 누구나 면허나 훈련 없이도 권총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미 허가증 없이 소총을 공공장소에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된 지 오래이고, 2015년부터는 주립대학 내에서도 총기 소지가 가능해진 상태에서 골수 지지자들조차 설마 되랴 싶던 데까지 실현된 셈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총기난사에 자주 쓰이는 반자동 소총 등 공격용 무기 소지 금지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심지어 판사는 판결문에서 반자동 소총을 스위스 군용칼에 비교하며 ‘가정과 전투를 위한 다목적 총기’라고 묘사했다.

미 대법원은 10년 넘게 계류 중이던 ‘헌법이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허가하는가’의 뉴욕주 분쟁을 전격 심의하기로 했다. 현재 9명 중 6명이 공화당 지명자로 구성된 대법원이 지난 4월 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총기폭력은 국제 망신”이라며 총기규제 대책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이 이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이다. 이에 총기단체들은 주로 대학 캠퍼스에서 큰 기관총을 들고 다니며 지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총기에 엄격한 7개주 중 대표 격인 뉴욕에서조차 관광지인 타임스스퀘어에서 갱단 간의 총격에 4세 아이가 부상을 당했다. 시장도 해변도 안심할 곳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흑인인권운동(BLM), 대선 등으로 인한 불안으로 미국의 총기 판매는 작년 사상 최대로 증가했다. 월마트에 장보러 간 김에 총도 살 수 있지만 총은 물론 총알 가격도 2배 이상 올랐다. 올해 들어 매주 10건 이상 총기사고가 벌어지자 미 연방수사국(FBI)은 총기난사를 만나면 ‘도망치고, 숨고, 싸우라’며 시민들의 생존전략을 홍보하고 있다. 그야말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이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세계 최대 로비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전방위 로비가 한몫했다. 회원 500만명, 150년 전통의 NRA는 2018년 로비와 선거자금에 5000억원을 쓰며 연방의원 절반 이상을 후원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총기판매점이 팬데믹 초기에 비필수업종으로 분류되어 영업이 정지되자 소송을 통해 필수업종으로 분류시키기도 했다. 이를 단속하는 주류담배화기단속국(ATF)은 NRA가 데이터 전산화를 반대하는 통에 아직도 모든 단속기록을 종이서류로 관리하다 무게를 못 이긴 선반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그런 NRA가 지난 1월 파산 신청을 했다. 뉴욕주가 지난해 최고경영진을 공금 횡령 등으로 고발하자 감옥 가기가 두려웠던 라피에어 부회장이 심지어 법률고문조차 모르게 혼자 신청한 것이다. 법원은 이를 기각했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NRA가 짐이 되던 라피에어를 털어내고 세력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바마 시절부터 총기와의 싸움 선봉에 섰던 바이든 대통령의 도전은 험난해 보인다.

한인들의 시선도 변하고 있다. 총기가 불법인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이 미국에 산다고 하루아침에 총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기는 어렵지만, 특히 시골일수록 자신만 총이 없어 당해선 안 된다며 필요성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아시안 혐오범죄로 호신용 페퍼스프레이를 샀던 나는 머뭇머뭇 쉽지 않은 뉴욕주 총기허가 절차를 찾아보다 또 자괴감에 빠졌다.

이채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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