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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지금 할머니한테 얘기하고 있는 것 맞아요. 마스크 안 쓰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집에 가시는 게 좋겠어요. 손 씻는 것 잊지 마세요.” 지난 2월 중국 관영 CCTV가 공개한 비디오 클립의 한 장면이다. 네이멍구에서 마스크 없이 외출한 할머니를 발견한 드론이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가 집에 들어가라고 종용한다. 놀란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린다. 중국에서 이런 유의 감시 드론 관련 영상은 차고 넘친다. 한 영상에서는 어느 집 마당에 모여 마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바깥에서 마작을 하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당신들 딱 걸렸어요. 지금 당장 흩어지세요.”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는 나라들은 중국의 감시 드론을 비판했다. 중국보다 강도는 약했지만 얼마 후 벨기에 브뤼셀에도 드론이 떴다. 어쩔 수 없어서 띄웠고 비판도 별로 없었다. 곧 이어 스페인의 마드리드에도, 프랑스의 니스에도 드론이 떴다. 이제 세상은 ‘특수한 상황이니까’ 감시 드론의 사용을 양해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가장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사용에 대한 심리적 저지선이 마침내 무너졌다는 점이다. 이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프라이버시 걱정 안 하고 데이터 마음껏 쓰면 좋은 거야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가져올지도 모를 프라이버시 침해와 민주주의의 후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논쟁은 오랫동안 평행선을 달렸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마침내 그 둑을 무너뜨린 것처럼 보인다. 최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수행한 전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선명히 드러난다. 1점이 부정, 5점이 긍정인 4점 척도 평가를 했으니까 3점 넘으면 긍정평가인데, 프라이버시가 일부 침해되더라도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거나 데이터를 써야 한다는 질문 모두가 3점을 가뿐히 넘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나의 인권을 일부 희생할 용의가 있다”(3.47), “확진자에 대해 지금보다 더 자세한 동선 공개를 해야”(3.47), “자가격리 위반자는 강력하게 처벌해야”(4.44) 등이다.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일부 침해하더라도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솔직하게 평가해보자.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라는 ‘특수한 상황이니까’ 드론의 감시를 받아들이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더라도 데이터를 사용하라고 허락하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일까? 이미 한국도 휴대전화 위치 정보와 신용카드 정보 등을 활용하고 있다. 확진자가 아니라도 대상이 될 수 있다.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장소 인근에 일정 시간 이상 머물렀다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보라는 안내문자가 날아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동시에 우리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경험해버렸다. 백 걸음을 양보해서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 이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난 100년 동안 감염병은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수 상황’은 조만간 또 온다.
우리만 데이터를 쓰지 않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얼굴인식을 포함해 국민의 사생활에 관한 세계 최고의 데이터를 쌓아놓고 있는 중국은 최근 마스크를 한 상태에서도 얼굴인식을 할 수 있는 기술에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사회신용체계로 집중화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을 평가하고 제재와 보상을 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모았든 쌓인 데이터는 과학기술 발전의 토양이 될 것이다. 이번에 선진국들은 그동안 중국에 얼마나 많이 의존해왔는지를 깨달았다.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유럽 다수의 선진국들도 마스크를 전량 중국에 의존해왔다. 마스크 대란과 함께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시신을 담는 가방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처리하기도 어려웠다는 점이다. 진짜 최악은 중국에 과학기술을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않든 데이터는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면 데이터 사용이 빅 브러더를 낳지 않도록 서둘러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민주적이고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사용으로 가는 것이 맞다. 마침 지난주 이광재 의원이 데이터부의 신설을 제안하고 나섰다. 그의 말대로 이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K방역의 성공은 대부분 보건당국과 의료진의 노동을 갈아넣어서 이루어졌다. 데이터를 쓸 수 있고 과학적 분석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희생은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대전환의 시기에 정치가 용기 있게 나서서 길을 열어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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