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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압승의 일등 공신은 코로나19였다. 대통령 지지율은 2월 말 42%에서 총선이 있던 4월 중순 59%로 17%포인트나 올랐고, 총선 압승의 여세를 몰아 5월 첫 주에는 무려 71%를 기록했다(이하 갤럽자료). 두 달 새 29%포인트 상승이다.

그러던 대통령 지지율이 8월 첫 주엔 44%로 내려앉았다. 27%포인트 폭락이다. 올라가는 데 두 달, 내려오는 데 두 달이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보통 두 가지를 꼽는다. 부동산정책과 고(故) 박원순 시장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부적절한 대처이다. 여기선 첫 번째에 집중해보자.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부동산정책의 방향이 옳으냐 그르냐는 여기서 일차적 관심사가 아니다. 옳든 그르든 그것의 정치적 결과가 무엇인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3년간 무려 23차례에 걸쳐 내놓은 부동산정책이 최근 지지율 폭락으로 이어진 데에는 두 개의 단계가 있었다. 첫 단계는 물론 부동산정책 그 자체이다. 한국에서 절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대입과 관련된 교육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이다. 국민 대다수가 지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분야여서 사람들은 게임의 룰이 바뀌고 예측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지금의 대입 제도가 부잣집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정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대입 제도를 대폭 바꾸면 서민층 수험생들은 기뻐할까. 그렇지 않다. 빠듯한 형편에 어찌어찌 준비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바꾸면 어떡하란 말이냐고 분노한다. 갑자기 바뀐 제도에 서민층 수험생들은 대책이 없지만 부유층 아이들은 일대일 과외로 오히려 더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분개한다.

교육보다 무서운 게 부동산이다. 교육은 아이의 미래지만 부동산은 나의 현재이자 미래다. 한국인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들어가 있다. 부동산은 한국인의 존재증명이자 인생계획이다. 그 과정이 공정했든, 그렇지 않았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결과가 대부분 부동산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존재증명이다. 자산의 80%가 부동산이라면 한국인들은 부동산을 빼고는 미래를 계획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생계획이다. 거칠게 밀어붙인 부동산정책은 상당수 국민들의 존재를 부정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을 넘은 판에 9억원 넘는 아파트를 가졌다고 졸지에 세금을 더 내게 된 국민들은 “내가 왜 투기꾼이냐”며 분노한다. 국민들의 인생계획도 흔들었다. 대출 끼고 집 사려고 차근차근 준비해온 사람들이나 부동산으로 노후계획을 세웠던 사람들은 누가 국가에 내 삶을 통째로 흔들 권리를 주었느냐고 분개한다.

이렇게 말하면 흔히 나오는 반론은 “그럼 부동산 문제를 그냥 두자는 말이냐”라는 반문이거나 “상위 1%만 대변한다”는 비아냥이다.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이미 여러 차례 주장해온 방식이다. 둘 다 본질을 호도하고 책임을 흐려놓는다. 문제 설정에 동의하더라도 최악의 방식을 비판할 수 있다. 상위 1%만 대변해서는 안 되지만 상위 1%도 대변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지지율 폭락의 두 번째 단계는 민주당의 일방적 강행처리였다. 어쩌면 정치적으로는 이것이 부동산정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7%포인트 떨어지고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간 지지율 격차는 현격히 줄어들었는데, 심지어 어떤 조사에서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역전된 것으로 나오기도 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민주당 지지율이 낮아져도 통합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다. 평소에 민주당을 비판했어도 막상 투표소에 나가면 “차마 통합당을 찍지는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통합당의 전신 새누리당 정권이 남긴 국정농단의 트라우마다. 그런데 이번에 무소불위 민주당의 국회 전횡을 보면서 사람들은 민주당이 통합당과 뭐가 다른지 묻게 되었고 마침내 통합당을 지지할 명분을 얻었다.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라면 내게 세금을 더 물리지 않고 나를 투기꾼으로 몰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비난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다음에도 민주당 정권이 연장될 것이라는 예측이 다수였으나,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부동산정책의 내용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두 개의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다. 주권자인 국민의 삶 자체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예단했다는 점, 의석수만 믿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가볍게 여기는 오만을 들켰다는 점이다. 국민에 대한 진지한 사과와 후속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 정치적 후과는 간단치 않을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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