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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가 돌아오고 있다. 그냥 큰 정부가 아니다.

대공황 때 미국 정부가 쓴 돈은 약 417억달러로 추산된다. 요즘 돈의 가치로 환산하면 6530억달러쯤 된다. 미국 의회가 지금까지 승인한 코로나19 예산은 이미 3조달러에 육박한다. 6년간 지속된 뉴딜에 쓴 돈의 다섯 배 가까운 돈을 6개월밖에 안 된 코로나19에 쓰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세 차례 추경에 편성된 예산만 해도 30조원에 가깝다. 앞으로 한국판 뉴딜을 제대로 추진한다면 향후 몇 년에 걸쳐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큰 정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이미 여러 나라의 정부들은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동선과 신용카드 정보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들여다보고 주거·이동에서 집회·결사까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한다.

큰 정부는 진보의 정부이다. 재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국가가 설 자리는 칼날보다 좁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위험사회론의 세계적 석학 고(故) 울리히 벡 교수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 ‘신자유주의 국가가 다가오는 위험사회에 맞서 국민을 보호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고 진단한 바 있다. 효율과 이윤이 문제가 될 때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 힘을 얻지만, 위험과 재난이 문제가 될 때는 국민을 보호할 큰 정부를 사람들은 갈망한다. 그러나 큰 정부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미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코로나19를 빌미로 한 정치적 권위주의의 부활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내가 곧 헌법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400년 전 루이 14세의 재림이다. 그러니 우리는 큰 정부를 요구하되, 큰 정부를 무턱대고 환영하지도 말아야 할 일이다.

현실은 이보다 좀 더 복잡하다. 코로나19는 큰 정부를 불러냈지만, 동시에 보수의 의제를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생존의 문제를 소환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경제적 생존과 안보적 생존이 그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진보의 의제인가? 큰 정부와 작은 정부라는 이분법에 근거해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복지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진보의 의제이다. 그러나 생계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지원이 불가피하다면 그것은 보수의 의제가 된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의 봄이 곧 올 것만 같던 때가 불과 2년 전인데, 태도를 돌변한 북한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험악한 위협의 수위를 높여가며 남북관계를 보수 정부 시절의 그것으로 되돌려 놓았다. 얼마 전까지 진보의 의제였던 남북관계는 조만간 보수의 의제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욕구단계설로 유명한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인간이 가지는 다섯 단계의 욕구 중에서 생리적 욕구가 가장 기본이고 그다음이 안전, 즉 생존에 대한 욕구라고 했다. 이 두 가지는 보수의 의제이다. 한국의 보수 세력이 안보와 성장 두 가지 기치하에 모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다음으로 오는 소속감, 애정, 성취감, 자기실현 같은 욕구들은 진보의 의제이다. 진보의 의제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등장한다. 경제성장과 진보 의제의 등장 사이에 뚜렷한 관계가 있음은 세계사가 증명한다. 얄궂은 코로나19는 진보의 정부에 보수의 의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1대 총선은 여야의 압도적 의석수 차이와는 달리 양쪽에 비교적 고른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총선의 의미에 대해 어떤 이는 민주당이 중도정당으로 자리매김되었다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도의 지지 없이 180석은 불가능한 일이라서 이 분석은 진실의 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힘 있을 때 밀린 숙제를 다 하고 싶은 욕구와 보수의 의제를 보수보다 더 성공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민주당은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얼마 전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진보보다 더 진취적인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통합당은 극우보수세력과 결별하고 원래 자신들의 주특기인 보수 의제를 진취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을까.

미국의 뉴딜은 민주당 30년 천하를 가져온 유권자의 재정렬, 즉 뉴딜연합(New Deal Coalition)을 낳았다. 한국판 뉴딜연합을 자기편으로 가져올 수 있는 기회는 유능한 진보와 진취적 보수 중에 누가 성공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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