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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벌써 4번째 계절로 돌아와 마스크를 처음 쓰기 시작한 때의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는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라 누군가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사이 바뀐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최근 제가 가진 세 번의 만남은 그 전의 해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첫번째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 학부모들과의 회의였습니다. 한 해에 몇번도 모이지 않는지라 이번에는 꼭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자 약속했지만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늘며 각자 생업으로 다니는 직장에서의 권고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또다시 원격회의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자택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자동차와 길 위에서 각자 참여한 회의는 지난 한 해 동안 익숙해진 모습이라 낯설지 않았습니다. 늦은 시각에도 일을 하느라 얼굴을 보이지 못한 학부모는 생업과 아이 돌봄을 병행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라는 새로운 발견을 안겨주었습니다. 공식적인 회의 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각자 칩거 중인 아이들의 근황을 들으며 우리집 아이만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나누었습니다.

두번째는 공사에서 열린 연구모임이었습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만나 미래사회에 대해 전문가들이 각자의 공부를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로 이 역시 마지막 세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하이브리드로 이루어졌습니다. 넓은 회의실에 띄엄띄엄 앉은 참석자들은 다른 도시에 있는 참석자들과 의견을 나누었고, 그 장면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었습니다. 발표자들의 모습뿐 아니라 자료 역시 공개되고 나중에 다시보기를 통해서도 공유되는 시스템은 연구 참여의 대상을 사회 구성원으로까지 확대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세번째는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 조찬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출장이 제한되다 보니 다국적기업들과 국내 유수 기업인들의 정보교류 모임은 위축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해외의 참석자를 화상으로 초청하고 한국에 있는 분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발한 의견 나눔이 가능해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이러스로 고통을 받기 전의 일상과 지금의 상황은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재빠르게 변화에 적응하며 생존의 기술을 갈고닦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쉬움들은 남아 있습니다.

학부모 회의에서 부족한 것은 각자 집 냉장고에서 들고 온 맥주로만은 채워질 수 없는 온기였습니다. 공식적인 회의 의결사항보다 같은 시대에 또래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 더욱 소중한 모임인데, 그 공감의 파장은 네트워크를 통해 온전히 전해지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연구모임에서 아쉬운 것은 시간에 맞춘 콘텐츠가 넘쳐나 더 많은 의견을 교환하고 싶었지만 절제했던 점입니다. 유튜브로 미리 약속한 공개시간의 제한은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간 초과를 조심하는 암묵적인 기운이 회의장에 드리워졌습니다. 참석자의 얼굴과 표정을 확인할 순 있어도 온라인 관객들의 분위기까지는 알 수 없기에 저마다 자신의 발언 총량을 절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조찬에서는 우연한 행운(serendipity)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각자의 관심사를 나누고 그날의 어젠다를 넘어선 교류를 새롭게 시작하기도 하는 것이 이러한 모임의 효용이기에, 정해진 순서로 진행이 끝나면 매몰차게 헤어지는 온라인의 매끈함은 채울 수 없는 공복감을 남겼습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 이 부족함을 메꿔나갈까요?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적응 방법이 다시금 고안될 것이라는 믿음은 저만 갖는 것이 아니리라 믿고 싶습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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