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북유럽연구소 연구원 중에 핀란드 사람과 결혼해 헬싱키에서 사는 친구가 있다. 만 다섯 살인 그의 딸이 어느날 어린이의 권리를 말했다고 한다. ‘세계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다섯 살 꼬마가 생각하는 어린이의 권리는 다음과 같다.

“어른이 아이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어른을 때리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는 어른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 모든 아이가 충분한 옷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아이가 충분히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나무와 같은 높은 곳에서 돌이 많은 위험한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구급차가 와야 한다. 모든 아이들은 충분히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꿈을 꿀 수 있다. 아이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른 아이가 와서 훼방을 놓으면 어른이 중재를 해주고 놀이를 방해한 친구는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한다. 모든 아이는 충분한 장난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안 된다.”

한국의 어린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같은 나이 조카에게 어린이의 권리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권리’라는 단어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어린이는 커서 세상을 이끌어야 되니까 어린이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어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러니 어린이가 행복하게 자라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바꿔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조카는 어린이는 엄마·아빠와 놀아야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두부를 많이 먹어야 하고 우유도 마셔야 한다고 했다. 유치원에 갈 수 있어야 하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아야 하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어야 하고, 아토피 때문에 어린이는 과자 대신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줄 그림을 그려야 하니 말 시키지 말라고 해서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 어린이의 권리가 모두 지켜지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단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다. 가정폭력상담센터에 근무하는 분의 말을 들으니 상담 건수가 증가했을 뿐 아니라 1차 상담사가 감당하기에 정도가 심각한 내용이 많아 중앙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여성긴급전화1366이 발간한 자료를 보면 올해 9월까지 전체 상담이 약 14만건에 이른다. 이 중 가정폭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57.3%다. 한국여성의전화도 상황이 비슷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1월에는 전체 상담 중 가정폭력의 비중이 26%였는데 이후 40%까지 증가했다.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아이는 언제나 피해자다. 폭력의 직접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족 구성원이 폭행당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 역시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스웨덴은 초등학교는 휴교하지 않았는데도 전년 동기 대비 아동학대가 50% 증가했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오히려 줄었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수가 2만6000여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7%가량 줄었다. 전문가에게 물으니 대다수 아이는 자신이 당한 일이나 부모의 잘못에 대해 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유일한 보호자가 부모이기 때문에 되레 가해자를 보호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따라서 아동학대는 신고의무자에 의해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전담 공무원, 교직원, 상담원 등 신고의무자가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줄어들어 상황 파악이 어려워진 것이 신고가 줄어든 이유다. 사각지대가 늘고 구조는 어려워졌다.

2016년부터 증가하던 아동학대 신고가 올해 들어 처음 감소했지만 신고건수 대비 검거건수는 오히려 늘었다. 과거 10건 신고 중 3건 정도가 학대로 판정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10건 중 4건, 지역에 따라 5건까지 검거율이 올라갔다. 숨은 학대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혼자 방치되어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는 결식아동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삼시세끼를 다 챙겨 먹는 아동의 비율은 35.9%, 2년 전에는 50.1%였으니 배고픈 아이가 늘어난 셈이다. 방임 역시 학대이니 여러모로 코로나19의 그늘이 짙다.

불행이 늘수록 분노는 약자를 향한다. 눈치 보고 불안에 떨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 어린이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집이 무서운 아이, 급식이 유일한 한 끼인 아이도 있다. 부족한 어른으로 마음이 아프다.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