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앗, 쥐오줌이네! 앞장서 가던 일행이 한마디 던졌다. 등산지팡이 끝에 다소곳이 서 있던 꽃은 이제 막 피어나려는 쥐오줌풀이다. 나도 안다. 저 꽃의 활짝 피어난 아름다움을! 그런데 웬 오줌? 몸 안에서야 어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성분이지만 몸 바깥에서야 어디 그런가. 우리나라 식물 이름에 참 사나운 게 많다. 그래도 저 정도면 얌전한 편에 속한다. 식물 이름 입에 넣고 중얼거리자고 했건만 여기에 열거하기가 좀 민망할 만큼 사나운 이름들. 말과 글을 독점하는 인간들의 횡포가 이리도 심하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원래 베토벤의 작품을 모티브로 쓴 동명의 소설이다. 베토벤이 작곡한 이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름에 관해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원래 이 곡은 베토벤이 친구를 위해 작곡하고 둘이서 초연까지 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뒤풀이 자리에서 그가 베토벤의 여자친구를 비난하자 화가 난 베토벤이 헌정을 취소하고 일면식도 없는 크로이처에게 이 곡을 주었다는 것. 그래서 이름이 ‘크로이처 소나타’가 되었다는 것.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뒤죽박죽이던 이 세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천지사방의 이름 없던 식물들에게 정식 명칭을 부여한 이른바 이명법을 확립하였다. 분류학의 아버지인 린네는 해롭고 추한 식물에 자신이 미워하는 적들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여기는 발왕산 정상 아래 헬기장이다. 닦아놓기만 하고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나무와 풀들만 애꿎게 쫓겨난 셈이다. 그 이름을 아직 잘 모르겠는 허리춤의 풀과 발목을 덮는 풀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대부분 사초과의 식물들. 그 틈에 엉겅퀴와 더불어 껑충한 꽃 하나가 있으니 바로 저 쥐오줌풀이었다. 뿌리줄기에서 쥐의 오줌 냄새가 난다고 해서 저런 이름이라지만 실감이 날 리가 없다. 가깝게 지내야 할 건 친구이고 더욱 가까이 두어야 할 게 적이라는 말도 있다. 누군들 품속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이름 하나 없겠는가. 차마 발설하지 못하는 제목 하나 간직하지 않겠는가. 여러모로 배운다, 쥐오줌풀. 마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지난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대산 적멸보궁 앞의 구슬붕이 (0) | 2020.06.30 |
---|---|
발왕산, 그림자, 일식 그리고 열쇠 (0) | 2020.06.23 |
화천 산소길에서 만난 버들개회나무 (0) | 2020.06.09 |
국립현충원 내 지장사의 컨테이너 (0) | 2020.06.02 |
관악산 어느 돌 틈에 핀 병꽃나무 (0) | 2020.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