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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뿔테 안경을 처음 쓴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참 가소로운 치기였다. 칠판 앞에서 코끝으로 내려온 안경을 검지로 슬쩍 밀어 올릴 땐 텔레비전이 아니라 공부 때문에 눈이 나빠졌다는 은근한 자부가 있었던가. 얼굴에 부착하는 이물질이 안경으로 족하려니 했는데 난데없이 마스크가 들이닥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한번 나빠진 시력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듯 잠깐 쓰고 벗을 마스크가 아니다. 이 얄궂은 물건이 찰거머리같이 오래 들러붙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 이 마스크 한 장의 사회학을 어찌해야 하나.

어수선한 나날들 속에 또 하루는 새로 시작된다. 버들개회나무의 개화를 관찰하러 화천 가는 길. 청정한 이 지역에도 현수막이 요란하다. 탐사 계획을 몇 번 미룬 탓에 시기를 놓쳤을까, 불안함을 내내 떨치지 못했다. 몇 개의 문을 열고 몇 개의 길을 골라잡은 끝에 파로호 아래 부표교인 ‘숲으로다리’를 걸었다. 산에서 내려온 노란 꽃가루들이 물에 즐비하게 퍼져 있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물길을 눈으로 촉감할 수 있다.

불길한 건 어디에서나 들어맞는 법인가. 버들개회나무는 이미 꽃이 지고 없다. 겨우 물가에 앉아 있는 늦둥이를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람 얼굴 모양의 큰 바위가 번들거리고 바람에 찰랑대는 물속을 보는데 문득 이런 오래된 궁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물 아래 물고기들, 햇볕 쬐러 수초 헤치고 나왔다가 다리 위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물고기들 보시기에 겨드랑이까지 물이 가득 차서 그야말로 물에 빠진 저 사람들. 답답해서 어떻게들 살아가시는 중일까. 물에서 물 바깥을 보면 세상의 구조가 분명 이러할진대 이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나야말로 거대한 착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윽고 물에 뜬 다리는 종점이 있고 숲으로 난 ‘산소(O2)길’로 연결된다. 숲에서 버들개회나무를 관찰했다. 꽃은 개회나무와 비슷하고, 잎은 물고기의 몸매처럼 날렵한 나무. 시무룩한 바깥과 달리 숲속은 휘황한 여름 기운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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