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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4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됐다”고 불을 지핀 뒤 여야 대선주자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8일 “기본소득제의 취지를 이해한다. 그에 관한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고 밝혔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본소득제는 사회주의 배급제”라고 반대했다. 기본소득 도입에 적극적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다시 “복지 대체나 증세 없이 가능한 수준에서 시작해 연차적으로 추가 재원을 마련해 증액하자”며 전 국민에게 20만~30만원의 소멸성 지역화폐를 연 1~2회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전날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전 국민 고용보험이 전면 실시돼야 한다”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간접 설전을 주고받은 격이다. 앞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사회적 약자층에 무게를 둔)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하자”고 밝힌 바 있다. 4·15 총선 후 여야에 연구모임이 생기다가 대선 잠룡들이 가세하면서 기본소득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언젠가는 맞닥뜨릴 ‘지구적 담론’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세계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자율주행차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자리·복지 대책으로 기본소득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재난지원금과 비대면 사회를 촉발한 코로나19는 그 논쟁을 증폭시켰다. AI나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실업자·저소득자 생계나 소비를 기본소득으로 뒷받침할 때가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석유수입금을 나누는 미국 알래스카주를 빼면 이 제도를 전면 도입한 곳은 없다. 지난 4월 긴급재난지원금 도입 때 거론되기 시작한 한국에서도 상시적 제도로서의 기본소득 논의는 이제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기본소득을 보는 시선은 갈려 있다. 8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48.6%가 찬성했고, 42.8%는 반대했다. 청와대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고 보고 있고, 논의를 점화한 김종인 위원장도 “어디까지 가능할지 연구해봐야 하는 단계”라며 신중한 자세다. 사회적으로 더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을 현재의 복지체계와 통합할지 보완하는 개념으로 볼지 판단해야 한다. 전 국민에 도입할지, 단계적으로 확대할지 살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증세와 로봇·빅데이터 등에 물릴 목적세 논의가 뒤따를 재원 문제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주창자인 벨기에의 필립 판 파레이스가 설파했듯 기본소득은 복지체계 통합과 재원 문제에 대한 높은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 때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고 있다. 약자를 보듬고 미래 사회에 다가서는 정책 대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누가 더 많이 줄지 환상만 키우는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한다. 축적된 고민과 토론과 준비 작업 위에서만 도입을 생각해볼 수 있는 백년대계의 길이다. 정치권도 시민사회도 기본소득 논의는 건설적이고, 책임 있게, 긴 호흡으로 접근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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