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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3법’이라고 정부가 명명한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등 3개 법안의 일부 내용에 대하여 재계와 보수언론의 반대가 거세다. 특히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1인 이상 분리선출제가 뜨거운 쟁점이다.
감사위원 1인 이상 분리선출제는 상장회사의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일반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고, 분리 선출 시에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과 합산하여 3% 그리고 일반주주는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에 대한 재계의 반대 논리는 이른바 ‘적장론’이다.
‘적장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현대차그룹이 2018년에 추진했던 현대모비스 분할 및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 시도가 무산된 이후에,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인 엘리엇이 2019년 현대차 주총에서 수소차 개발에 경쟁 관계에 있는 외국계 기업의 임원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던 사례가 있다. 물론 이 후보는 사외이사로 선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재계는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만약에 감사위원 1인 이상을 분리 선출한다면, 이런 외국인 임원이 실제로 감사위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먼저 엘리엇이 추천한 이 인사의 득표율은 3% 룰을 적용해 다시 계산해도 과반에 훨씬 못 미쳤다. 이런 이해충돌이 있는 인사를 이사로 소수주주들이 선출할 이유도 없다. 현대차의 외국인 주주들이 현대차에 투자한 자신의 자산가치를 손상시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해상충이 있는 외국 헤지펀드가 3% 미만으로 쪼개서 여럿으로 들어오는 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지만) 우려된다면, 대기업 지분 10% 전후를 통상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다른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포함한 일반주주의 의결권에 대한 3% 제한을 없애면 된다.
미국 기업들의 경우엔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같은 규칙이 없어도, 동일 또는 유사 산업의 CEO나 전직 CEO가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선 ‘적장론’이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일까? 만약 특정 이사가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면, 이 이사는 배임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이사를 통해 기술을 탈취한 경쟁기업은 징벌배상의 대상이 된다. ‘적장론’이 걱정이라면, 이사의 배임에 대한 처벌과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배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동일한 내용이 금융회사에 이미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 지분이 제조업 재벌기업보다 더 높은 금융회사에서 ‘적장론’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상장기업들이 외국인 임원을 이미 많이 고용하고 있고 이들을 포함한 국내 연구진도 외국 기업으로 이직하는 일이 빈번한데, 사외이사를 통한 기술탈취를 걱정해서 분리선출을 반대한다는 주장은 공허하다. 이쯤에서 재계의 ‘적장론’에 대해 상법 주무 부처인 법무부 장관이 “소설 쓰고 있네”라고 일갈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부 역시 공정경제 3법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부안대로 법안들이 통과되더라도 공정경제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은 한국의 소수주주-대주주 경영인의 이해상충을 해소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이를 위해선, 이스라엘·인도 등의 해외 입법 예처럼, 총수일가인 이사와 임원의 보수, 계열사 간의 M&A, 일정 규모 이상의 내부거래에 대해 소수주주 동의제(Majority of Minority)를 상법에 도입해야 한다. 이럴 경우 굳이 공정거래법에서 사익편취를 위한 내부거래를 규제할 이유도 없어진다.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는 고려도 하지 않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 없이는 공정경제의 핵심인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2013년 개혁과 유사한, 계열사(출자계열사)에서 출자받은 계열사(피출자계열사)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출자를 금지하되 100% 출자는 적용 제외하는 출자 규제가 공정거래법에 도입되어야 한다. 이 규제는 정책의 수용성 제고를 위해 재벌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알맹이 빠진 공정경제 3법도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라고 재계나 일부 정치권이 반발한다면, 반시장적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반체제적 몽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입법 추진과 반발이라는 이면에서, 이른바 공정경제 3법과 차등의결권 제도를 주고받는 거래를 정부와 재벌이 한다면, 그 소설의 결말은 국민 기만이 될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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