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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성과 신뢰의 위기로 점철된 이 시대적 현실에서 그는 희망의 예언자이자 자비의 시인.” 세계 가톨릭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교서(‘영원한 빛의 찬란함’)에서 기린 ‘그’는 누구인가. 대서사시 <신곡>으로 중세를 마감하고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다.
<신곡>은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을 둘러보는 여정을 담은 서사시다. ‘지옥’ ‘연옥’ ‘천국’ 3편으로 구성됐고, 각 편은 33개의 곡으로 서곡을 포함해 모두 100곡, 1만4233행으로 이뤄졌다. 원래 <La Comedia>(희극)란 제목이었으나 그를 존경한 보카치오가 위대성을 강조하며 디비나(Divina·신적인)란 수식어를 붙여 이후 ‘La Divina Comedia’로 불린다. 우리가 <신곡(神曲)>이라 하는 것은 일본어 표기에서 유래됐다. <신곡>은 교양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하지만 실상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칭송을 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이다. 고대 그리스·로마부터 당대 역사와 문화·사상이 숱한 상징과 비유로 응축돼 있어 독파는 물론 이해하기도 어렵다.
<신곡>과 단테를 향한 찬사는 르네상스 이후 줄곧 이어져왔다. 단테는 “지구 위를 걸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미켈란젤로)이며, <신곡>은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최고의 작품”(괴테)으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영원한 뮤즈이기도 하다. <신곡>에서 영감을 얻거나 이를 주제나 소재로 한 문학·음악·미술·영화 작품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는 단테 서거 700주기다. <신곡>을 기리는 행사들이 전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다. 교보문고도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날(4월23일)을 앞두고 올해의 아이콘으로 단테를 선정, 다양한 기념행사를 벌인다. 서울도서관도 인문학 강좌를 마련하고 대학로에선 <신곡>을 소재로 한 연극 무대가 예정됐다. <신곡>이 지난 700년 동안 끊임없이 호명되는 것은 이 작품이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이냐는 본질적 물음을 던지고 있어서다. 우리는 단테가 만든 <신곡>의 세상, 그 어디에 자리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도재기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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