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학·심리학·경제학·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개념 ‘프레이밍(framing)’은 ‘틀짓기’로 번역된다. 분야별로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를 설명하는 유명한 비유가 있다. 물이 절반쯤 들어있는 컵을 보며 A는 ‘절반이나 남았네’, B는 ‘절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하는 경우다. 같은 양의 물을 보고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은, 현상을 해석하는 기반이 되는 인식 틀(프레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국(전 법무부 장관) 문제하고 비슷한 게 있으면 얘기해보라. 앞으로 프레임 하지 말고 검증하시라. 지금 기자들이 얘기하는 게 전부 다 프레임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장제원 비서실장이 18일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의혹에 대해 질문이 쏟아지자 발끈하며 한 말이다. 앞서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도 “무리한 프레임을 씌우지 말라는 의미에서 경북대 측에 철저한 소명자료를 요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모 경북대 의대 교수는 “이젠 보수층도 (정 후보자에게) 사퇴하라고 한다”며 “나라면 그만두겠다. 그러나 새 정부 출발에서 프레임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버텨주어야 할 필요도 있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언론의 검증 보도를 ‘무리한 프레이밍’으로 규정하려는, 또 다른 ‘프레이밍’이다.
현실 정치에서 프레이밍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최대 쟁점이 된 무상급식 논쟁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보수진영에선 무상급식에 ‘도덕적 해이’ ‘좌파 포퓰리즘’ 등의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 진보진영은 ‘인권’ ‘평등’ ‘삶의 질’ 등의 프레임을 제기했다. 프레임 전쟁의 승리는 진보에 돌아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복지 확대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커졌는데, 보수는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정치적 논쟁에서 디테일 싸움보다 프레임의 재구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그 재구성을 통해 공정·평등·자유·책임 같은 가치를 점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언론은 ‘프레이밍’이 아니라 검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이 윤 당선인 측 주장대로 ‘프레임 전쟁’이 맞다면, 공정·평등 같은 가치를 점령하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다.
김민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