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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철학자 레오 뢰벤탈은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 그는 1901년부터 1941년까지 미국 잡지에 나오는 일대기를 조사하여 해당 시대가 바라는 영웅상이 무엇인지를 분석하였는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잡지에 일대기가 수록된 영웅들은 진지하고 중요한 전문직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경제계의 거물이거나 정치가, 진지한 순수 예술가들과 같은 ‘생산의 우상(idols of production)’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일대기의 주인공들은 ‘소비의 우상(idols of consumption)’으로 변화되었는데 이들은 운동선수나 영화배우 같은 오락 분야의 사람들이거나 특별하지 않은 성격의 보편적 인물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기회를 잡고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대공황이라는 복잡한 미국 경제의 변화 속에서 대중이 바라는 우상의 형태가 변화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리라. 중요한 건 그렇게 복잡다변했던 사회상이 잡지 속 일대기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언론과 출판이 누군가를 끊임없이 호명하고 그와 관련된 글을 쓴다면, 그 사람은 이 시대가 바라는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할 것은 개별 우상의 면면이 아니라 인물상 그 자체여야 한다. 일대기의 목적은 과거의 인물을 그저 복사해 붙여넣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줬던 결단력이나 판단력, 넓은 시각 등 장점을 공유하고자 함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대의 우상이, 영웅이 무엇을 했는지에 집착할 뿐 어떻게 그것을 성료했는지 본질적 고민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작고 후 온 언론은 이건희 회장의 행적을 되새기며 거대한 디지털 위령비가 되길 자처했다. 작은 발언 하나까지도 끄집어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재해석하고, 수많은 우상을 양산한다. 이러한 행보는 낯설지 않다. 김연아라는 올림픽 영웅이 탄생한 이후 언론은 김연아의 행적을 주목했다. 김연아의 삶은 분석되었고 곧 김연아 자서전이 출판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성공이나 싸이의 성공, BTS를 비롯한 아이돌의 성공에 대한 반응도 그러하였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생전에 그의 생애와 리더십을 찬양하는 책들이 다종 출판되었으니 더더욱 이러한 작업이 어렵지 않았으리라.
이제 우리는 우상을 해체하자. 신화화된 한 사람을 분해해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비판하자. 정치인의 죽음, 기업인의 죽음, 예술가의 죽음, 노동자의 죽음 속에서 죽음은 쉽사리 사람을 신성화하고 제대로 된 공과 평가를 유보시킨다. 이러한 우상의 끊임없는 양산이 어떠한 생산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이는 그저 공허하게 반복되는 텍스트 굿즈에 불과하다.
우상을 숭배할 사람은 모두 병들고 지쳤는데 우상만 무한히 양산되어 판매된다. 우상을 따라 할 물리적, 정서적 기반도 없는 폐허가 계속되는데 우상의 업적은 마치 죽은 사람에게 수의를 입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된다.
그야말로 우상 양산의 시대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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