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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마 총살을 당할걸?”

2020년 늦봄, 천연비누와 캔들을 만드는 공방 클래스에서 코로나 사태를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말한다.

신천지 모임, 이태원 클럽이 민감한 사회적 이슈가 된 시국에 공방에서 확진자가 나온다면? 그래도 취미활동을 하는 공방은 동선이 공개돼도 욕은 안 먹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수미는 갑자기 웃으며 말한다. 우린 아마 총살을 당할 거라고. 이 살벌한 농담에 다른 이들은 아무 말이 없다. 문득 코로나 시국에 취미생활을 하는 유자녀 기혼 여성이라는 자신들의 조건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발표된 최은미의 단편소설 ‘여기 우리 마주’(문학동네 2020년 가을호)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10대 딸아이를 키우는 4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기 우리 마주’는 코로나 사태가 유자녀 기혼 여성의 일상에 침투하여 인간관계를 어떻게 뒤틀고 있는지 보여준다.

놀이터보다 휴대폰을 더 좋아하는 딸아이와 오랜 협상으로 만들어낸 규칙을 처음부터 재조정해야 하고, “쓰지 마. 가지 마. 하지 마. 위험해. 너무 위험해. 다 차단해.”라는 말을 입에 달면서 딸의 안전을 책임지는 완벽한 방역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남편이 “우리 딸 사춘기인가! 하하하!”라고 웃어넘기며 모녀 갈등에 대한 책을 사오는 동안, 단 한시도 아이로부터 눈을 떼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손쉽게 손가락질당한다.

문제는 가정에서 보살핌의 의무와 자녀와의 결속이 심해지는 만큼 사회에서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지워야 하는 이중의 결박에 놓인다는 것이다.

공방을 운영하는 기혼 여성 ‘나’는 전문성을 인정받고 신뢰받기 위해서, 지도사이자 선생님이라는 정식 호칭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주부로서의 노동은 선별적으로 분리하여 ‘패싱’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 그러니 공방을 홍보하는 인스타그램에 ‘#직장인취미’ ‘#직장인소확행’을 강조하는 반면 ‘#주부취미’를 해시태그로 다는 일에는 오래 망설일 수밖에 없다. 엄마라는 역할은 코로나 시국에 더 완벽하게 요구되기에 그 역할과 무관한 어떠한 행동도 죄책감과 자괴감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난 다른 기혼 여성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고 싶을수록 고통을 나누지 못한 채 고립되고, 자기혐오의 압력은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투사된다. “너희가 클럽에서 처놀지만 않았어도. 너희가! 너희가!”

코로나 시국에 ‘내가 확진자가 된다면’이라는 가정은 ‘내가 사회에서 어떤 카테고리에 속하여 어떤 취급을 받는가’라는 질문으로 변환된다.

‘건전’하고 ‘정상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공방마저 무시무시한 낙인과 처단의 장소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재난이 서사화되는 기준이 ‘확산 진원지의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원래 혐오하고 있던 대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는 인종, 성정체성, 직업, 계급에 따라 재난이 어떻게 차별적으로 분배되는지 경험했다. 누군가 확진자가 된다는 상상은 재난 이전에 이미 정초되어 있던 배제의 질서를 공포와 함께 작동시키고 그간 우리가 혐오해온 대상을 가시화한다.

당신은 아시아인입니까? 종교 모임을 한 적이 있습니까? 동성애자입니까? 외국에 다녀왔습니까? 취미 생활을 하는 유자녀 기혼 여성입니까? 우리는 가능한 한 손사래 친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그러나 그다음 질문은 누구에게 겨눠질까.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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