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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완벽한 쉼이라고 생각했다. 연이어 내린 비 덕분에 하늘은 유난히 깨끗했고 햇볕은 딱 기분 좋을 만큼 내리쬐었다. 음악앱으로 여름바다와 관련된 노래를 재생시켜놨고, 눈앞에 펼쳐진 속초바다는 기대보다 더 예뻤다. 배도 부르니, 여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보낼 계획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단, 둘째가 급발진하기 전까지만.
분명 형과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분에 못 이겨 비명 섞인 울음까지 터트렸다. 바다를 보며 얻었던 마음의 평화는 30분도 안 돼 완전히 깨져버렸고 자리를 옮겨 다시 세팅해보려 했지만 아까와 같은 몰입은 어려웠다.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 자식이 공공장소에서 온몸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을 옆에서 같이 봐야 했던 친구에게 민망하고 미안했다. 많이 부끄러울 뻔했는데, 친구가 “내 자식도 아닌데 나는 괜찮다”고 말해줘서 더없이 고마웠다.
속상하지만 내 아이는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공중질서를 잘 지키며, 다정하고 ‘스윗’하며,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높은 사회적 기술을 연마한 그런 유니콘 같은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사춘기 아들들은 거칠고 종잡을 수 없으며 종종 이기적이다. 잘 길러보려 10여년째 애쓰고 있지만 솔직히 자식은 늘 내 맘대로 되지 않고 솜사탕같이 말랑하고 천사같이 포근하던 그 아이들은 오늘도 점점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뿔 달린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다.
양육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열심히 해도 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고, 꼭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 볼래, 밭 맬래?’ 물어보면 밭 맨다고 대답한다는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없다. 애가 하나이거나 많거나 육아는 어렵다. 사람을 길러내는 일에 원칙이야 있겠지만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는 왜 이렇게 육아고수가 많은 걸까. 특히 온라인 세상에는 말이다. 오은영 의학박사가 멘토로 참여하는 육아코칭 프로그램이 새 출연자를 소개할 때마다 댓글창은 난리가 난다. 어찌나 독한 말들을 쏟아내는지, 아이가 혹시 영상을 찾아보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 지경이다.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면 아이가 문제행동을 할 리 없는데 엄마가 사랑을 덜 줬다는 ‘사랑 만능설’, 두들겨 맞다보면 어련히 말을 잘 들을 텐데 어설픈 인권단체들이 애를 망쳐놓는다는 ‘몽둥이 찬양설’, 저런 애들은 다 본성이 남달라서 교육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격리수용설’까지 저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막말과 비난을 쏟아낸다. 거칠거나 불안정하거나 분노하는 아이의 모습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온 마을이 함께 기른다는 의미가 설마 온 동네 사람들이 충고와 조언과 평가를 던진다는 뜻이었을까. 문득 친구가 내게 사랑을 더 주라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하지 않아 고맙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얼굴이 화끈거리던 그 시간 동안 옆에 있어준 것만으로 많은 힘이 되었다. 함께 기른다는 것은 어쩌면 함께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뜻인가보다. 아이에게마저 성장 과정을 건너뛰고 완성형 인간이 되어 있기를 요구하는 가성비 중독사회의 지친 양육자들에게 부모 노릇 운운하는 사람보다 묵묵한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음 좋겠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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