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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코앞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1박 이상 고향을 찾을’ 사람은 12%, ‘따로 사는 가족·친척을 만나겠다’는 사람은 33%로 나왔다. 귀성은 넉달 전 추석 기록(16%)도 다시 깼다. 옛 시구를 빗대면, ‘설래불사(來不似)설’이다. 가족·친구끼리도 시차를 두며 둘·셋·넷이 만나자는 설이다. 그 밥상·술상 얘깃거리로 코로나19를 앞설 게 없다. 그리고 늘 그렇듯 꽤 많은 자리에서 설 대화에 정치가 더해질 것이다.

코로나가 이리 길지 몰랐다. 이토록 자영업자에 가혹할지도 6년 전의 짧은 메르스 땐 몰랐다. 이젠 사람들도 백신 집단면역은 11월에 생기고, 올핸 마스크를 벗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곤 묻는다. “다음 세상은 어디로 가느냐”고…. 역사는 공교롭다. 코로나 너머가 바로 대선(2022년 3월9일)이다.

다시 ‘시즌2’ 대선을 맞는다. 1987년 직선제 개헌 후 노태우·김영삼(보수)-김대중·노무현(진보)-이명박·박근혜(보수)의 세 묶음이 있었고, 문재인 정부는 13개월 뒤 갈림길에 선다. 세번의 시즌2 정부는 개혁노선이 일궈냈다. YS는 민정계(이종찬)를, 노무현은 동교동이 민 이인제를 눌렀다.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복지를 앞세워 당의 좌표를 왼쪽으로 옮겼다. 호랑이굴에 뛰어든 비주류(YS·노무현)와 정책을 좌클릭한 보수주류(박근혜)가 최종 승자가 된 뒷심은 대동소이하다. ‘대통령 새로 뽑는 맛’을 극대화한 것이다.

신정에서 설까지 대선지형은 요동쳤다. 한국갤럽 조사는 2월에 이재명 27%, 이낙연 10%, 윤석열 9%로 나왔다. 작년 11월 19%로 같던 ‘두이(李)’는 악어입처럼 벌어졌다. 이재명의 상승세는 성남시장·경기지사로 보여준 추진력(청년배당·무상교복·계곡 불법물 철거)과 재난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대출로 쌓은 생활진보 정치가 두 축이다. 급추락한 이낙연은 반추할 게 많을 1월이다. ‘이·박 사면론’과 ‘누더기 중대재해법’이다. 그의 지지축이었지만 진보성향자가 많은 호남·친문에서부터 역풍이 일었다. 반전의 승부수를 빨리 찾지 못하면 여권의 제3지대가 커질 것이다. ‘여왕벌’이 없는 제1야당 대선은 아직 논외다. 시선은 교두보 삼고픈 4월 보선에 가 있다. 당 정강에 경제민주화·기본소득을 명시한 김종인과 공정경제3법·중대재해법 처리 때 기업 목소리만 키운 의원들의 간격은 여전히 크고 불안정하다. 정권을 계승·발전시킬 이유, 교체할 이유, 내가 돼야 하는 이유는 다 다르다. 승자의 길이 시대정신이다.

코로나 속 대선은 1932년 미국의 ‘뉴딜 대선’과 닮았다. 뉴딜은 토건·공공근로 사업으로 더 알려져 있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과 수백만개 청년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하나, 그것은 1단계 구호(Relief)였다. 뉴딜은 재정지출로 소비·경기를 회복(Recovery)하며 불평등을 줄이는 개혁(Reform)으로 나아갔다. 실업수당부터 노령연금·단체교섭권·부유세·공공임대까지 미국의 노동·복지 축이 세워졌다. 뉴딜은 노예제 폐지 후 70년 넘게 공화당이 쥔 정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30년 넘게 넘어가는 분수령도 됐다. ‘3R’ 수혜를 입은 노동자·농업인·흑인에, 정책 지지자들(리버럴)이 가세한 ‘뉴딜연합’이 태동한 것이다. 루스벨트에게 진 후버는 “실업은 개인이 극복해야 하고, 구호자금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21년 한국도 공공부조·근로가 진행 중이다. 보편·선별·선별로 27조원(직접지원 기준)이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네번째 문턱 앞에 서 있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두꺼운 선별, 소비 핏줄을 돌리는 보편, 손실보상 어느 것도 빠질 수 없다. 4차든 5차든, 방역 상황 따라 순서 조합만 남았을 뿐이다. 외려 속도 못 내는 것은 제도개혁이다. 코로나는 일자리·교육·성의 불평등, 공공의료, 저부담 저복지, 기후·증세 문제를 쏘아올렸다. 큰정부인지 작은정부인지 묻는다. 대선은 다시 길싸움이다.

정치공학에선 선거 승부추를 3가지로 꼽는다. 새 유권자와 들토끼를 잡는 ‘동원’, 산토끼의 지지를 바꾸는 ‘전향’, 집토끼의 ‘결집’이다. 검찰·사법·언론 개혁은 시대적 과제지만, 선거에선 네거티브가 부딪치는 결집·전향의 영역이다. 중도층이나 투표율 낮은 청년·비정규직·무주택자의 선거 참여는 내 삶의 문제가 사회경제적 의제가 될 때 높아진다. 정치의 본령, 선거의 정공법, 대선주자 지지축이 다를 바 없다. 민주주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오고, 그 출구는 약자에게서 열린다. 대공황의 유산도 그것이다. 코로나 속 1년의 대선레이스가 설에 시작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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